
11월 22일 저녁 7시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위협하는 정부 기관과 사업자에게 수여하는 2005 빅브라더상이 개최되었다. 시상식은 영화제 시상식을 패러디한 꽁트 형식으로 꾸며졌으며, 수상자로 분장한 배우들의 익살스런 연기가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날 시상식에는 일본에서 정보인권 운동을 전개하는 토시마루 오구라 교수가 참석하여 최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라이버시 사안들을 소개했으며, 행사장 주변에서는 기획사진전 <빅브라더의 눈>이 열렸다.
수상자와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다.
2005 빅브라더상 (Big Brother Award Korea)
수상자 선정 이유 및 심사평
가장 끔찍한 프로젝트상 : 주민등록번호제도
선정 이유 :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범용의 평생불변 전국민 고유식별자이다. 때문에 각종 개인정보 도용 사건을 유발하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번호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해를 입더라도 효과적으로 권리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번호 조합체계 자체가 출생연월일과 성별, 출신지역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국가의 통제 및 각종 사회적 차별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배경 요소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주민등록번호는 인터넷실명제를 비롯하여 각종 개인정보 공유의 매칭 키가 되고 있어 그 위험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심사평 : 심사위원들의 압도적 다수가 주민등록번호제도를 수상자로 추천해왔다. 시행된 지 30년이 된 제도이며 이미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져있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없지는 않았으나, 프라이버시 침해에 있어 주민등록번호제도의 상징적 지위를 감안할 때 첫 번째 빅 브라더상의 수상자로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였다.
최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유전자 감식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통해 실체가 드러난 검·경의 신원확인 유전자DB 구축 사업 역시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주민등록번호제도의 상징성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가장 가증스러운 정부상 : 정보통신부
선정 이유 : 개인정보 보호의 책임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터넷의 자유를 말살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펴 온 명실상부하게 ‘가증스러운’ 정부기관이다. 특히 지난 2003년에 이어 2005년 들어 또다시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하면서 익명의 권리를 말살하고 있다. 게다가 ‘각종 사이버 폭력 및 명예훼손 행위’가 사실 실명제 사이트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실명제는 실효성 역시 의심스러운 제도이다.
정보통신부는 이 외에도 연구용 생체정보 DB를 구축하기 위해 법적 근거도 없이 3천6백명의 지문정보와 2천여명의 화상정보를 수집했으며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복 추천된 바 있다. 또,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수년간 휴대폰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국가정보원 X파일 조사 과정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며, “국가 안보차원에서 감청이 쉽도록 만들어야 불법 감청이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 하에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 개정 등 추진하고 비화폰 개발을 막는 등, 이중적 행태를 일삼아왔다.
심사평 : CCTV 확대의 주범인 강남구청조차 예선탈락할 정도로 쟁쟁한 후보들이 너무 많아서 심사에 어려움이 컸다. 정보통신부와 국가정보원, 헌법재판소가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국가정보원은 올 하반기 정국의 핵이었던 X파일 사건의 주범이었다는 명백한 죄상으로 인해 상당수 심사위원들의 추천을 받았다. 한편 헌법재판소 역시 권위주의 정권의 유물인 지문날인 제도를 합헌으로 인정해준 시대착오적 판결로 인해 심사위원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의 경우 당초 후보 공모 과정에서 후보로 추천되지 않았다가 심사위원단에 의해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심사에서 제외되었다. (너무나 명백한 죄상 때문에 시민들이 오히려 추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경우 정작 침해의 주범인 경찰청 지문데이터베이스를 내버려두고 종범만 문제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 때문에 막판에 아쉽게 제외되었다.
당초 인터넷 실명제와 관련해서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실무책임자인 라봉하 과장, 그리고 이해찬 국무총리도 추천을 받았다. 또 선거법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후보로 추천되었다. 그러나 심사 과정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보통신부로 후보를 단일화했다.
가장 탐욕스러운 기업상 : 삼성SDI를 떠도는 유령
선정 이유 : 지난 2003년부터 2년간 삼성SDI 전·현직 직원 12명의 휴대폰이 누군가에 의해 반복적으로 위치추적되었다. 이들은 모두 노조 설립 활동에 관여한 직원들이었으며, 위치추적 장소가 삼성 SDI 소재지역이고 집중적으로 위치추적을 한 시기가 구조조정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 등의 정황상 삼성 SDI 측의 조직적인 직원 감시 행위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위치추적을 직접 실행한 ‘누군가’를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수사를 중단하여 “유령의 소행으로 몰고 갔다”, “검찰의 사전적 정의를 ‘조사하여 사정을 밝히다’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면 사정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로 바꿔야 한다”는 등의 비난을 받았다.
심사평 : 역시 심사위원들의 다수의 지지를 받고 삼성SDI를 떠도는 유령이 선정되었다. 당초 삼성SDI가 후보로 추천이 되었으나 삼성SDI의 관련성이 검찰 수사에 의해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유령’을 후보로 하기로 결정되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검찰의 무능력과 불성실까지 결합된 사건이라는 점, 위치추적이라는 신기술이 개입된 사건이라는 점 등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한 결정이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나 기륭전자 등 노동자들을 마치 죄수 다루듯이 감시해온 기업들 또한 후보로 추천되었지만, 거대 기업의 책임을 더 크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 심사위원들이 좀 더 많았다.
특별상 - “내 귀의 도청장치” 상 : 국가정보원
선정 이유 : 1961년 박정희에 의해 탄생한 이래 44년간 중정, 안기부 등으로 개명을 거듭하면서 각종 불법 정치사찰과 사회운동 탄압, 양심수 양산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불법도청을 근절하겠다는 수 차례 약속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5년 최고의 화제작인 “X파일”의 주연을 맡은데다, 개혁의 대상임에도 오히려 테러방지법을 재추진하여 조직 확대를 꾀하는 등 반성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후보로 추천되지 않았음에도 심사위원들의 뜻에 의해 특별상을 수여하게 되었다.
네티즌 인기상: 검·경의 신원확인 유전자DB구축사업
심사위원의 엄정한 심사를 거친 위의 수상을 제외하고 네티즌 투표를 해서 가장 많은 투표수를 획득한 후보에게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검·경의 신원확인 유전자DB구축사업이 후보에 선정된 이유: 1990년대 중반부터 검찰과 경찰은 범죄자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DB구축을 시도해왔다. 지난 10년동안 설립주체를 놓고 주도권다툼을 벌이던 검경은 최근 각각의 DB를 만들어 연동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본 후 관련 법률을 국회에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개별적 상황에서 개인의 DNA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수사기관이 특정인의 DNA를 강제로 채취 영구히 보관하는 DB를 구축하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