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예산은 엄연히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꾸려지지만 그 편성과 집행은 공무원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자신들을 위한 돈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무원 복지와 수익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전국 곳곳에 골프장을 짓는가 하면 청사 건물도 갈수록 대형화·고급화하고 있다.
경기 화성시 동탄면 입구. ‘화성상록 골프장 18홀 조성사업’이라는 간판이 서 있다. 간판을 따라 10여분쯤 차를 달렸다. 굴착기 1대가 골프장 입구에서 굉음을 내며 흙더미를 옮기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야산을 깎아내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린으로 이용될 둥그런 평지도 곳곳에 눈에 띈다. 아직 엉성하긴 하지만 골프장의 골격을 갖춰가고 있다. 이 골프장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전·현직 공무원 복지 차원에서 짓고 있다. 2006년 10월을 완공 목표로 현재 53%가 지어졌다. 공단은 또 이 골프장 인근에 9홀을 추가로 짓기 위해 국토이용계획변경을 신청한 상태다. 동탄면 일대에 27홀짜리 골프장(32만6천평)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전체 공사비는 6백36억원.
천안리조트 골프장처럼 주말과 공휴일에는 일반인 예약을 전혀 받지 않는 ‘공무원 전용’ 골프장이 된다. 주중에는 일반인과 공무원 이용객을 절반씩 배분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예약 경쟁률은 20대 1에 이른다. 주말·공휴일 요금의 경우 일반인은 14만5천원을 내지만 공무원은 60% 수준인 8만7천원을 낸다.

영·호남권 골프장의 경우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의 중간쯤에 한곳씩 짓겠다는 계획만 서 있고 대상지 선정 등 세부계획은 짜여있지 않다. 공단 관계자는 “천안리조트 골프장의 연평균 수익률이 16%에 이르는 등 아직은 돈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부 예산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는 기관도 앞다퉈 골프장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경기 남양주에 골프장을 짓고 있다. 국가보훈처 산하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내년 1월 제주도에 골프장을 착공한다. 36홀 골프장(뉴서울)을 소유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도 2007년쯤 경기권에 또 한곳의 골프장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와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영·호남 지역에만 현재 건설중인 22곳 외에 90곳의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강원도의 한 지자체가 추진중인 골프장 사업에 대해 겨울철이 길어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조언했지만 ‘땅이 있으니까 지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면서 “일단 벌여놓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예산 낭비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공무원을 위한 사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사가 80% 정도 진척된 경기 용인시청 신청사는 지하 2층·지상 16층의 ‘메머드’급이다. 부지 면적만 7만9천4백여평, 건축 연면적은 2만4천평에 이른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본관(연면적 2만3천여평)과 맞먹는 규모다. 시청사·의회청사, 보건소, 문화·복지센터 등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행정타운으로 1천8백여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가게 돼 있다. 예산지원 요청에 행정자치부가 난색을 표시하며 규모를 줄이도록 요구했지만 용인시는 시비(市費)로 공사를 강행했다.
전남·전북도청과 경북 포항시청도 ‘대형 청사’ 논란에 직면해있다. 하지만 해당 기관 관계자들은 “장래 수요까지 감안하다 보니 규모가 커졌다”며 “민원인들이 이용하는 만큼 반드시 공무원들만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예산 지원말고는 지자체의 청사 건립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우리도 언론보도나 감사원을 통해 겨우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 편성과 집행의 전권이 공무원에게 집중돼 있고 심의마저 겉핥기식으로 진행돼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경실련 이원희 예산감시위원장은 “참여예산제를 도입해 통제와 감시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공무원들 간에도 상하 직급에 따라 수혜 폭이 달라지기도 한다. 국회 법사위의 2003년 법무부 결산검토서는 “검사 37명과 일반직 11명을 장·단기 해외연수 대상으로 잡았지만 실제로는 검사 48명과 일반직 6명이 해외를 다녀왔다”고 지적했다. 2001년과 2002년에도 일반직 5명씩 장기 연수를 보내기로 했지만 단 한명도 나가지 못한 반면 검사들은 계획대로 시행됐다. 법무부는 “연수준비가 부족하거나 연수선발시점이 연수대상지 사정과 맞지 않아 일반직이 잘 가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특별취재팀 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구청·도청 기금 직원에 연리3% 저리대출-
지난 8월 감사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각종 기금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보통의 관행과 달리 특정 구청을 거명했다. 서울 강남구청이 ‘공무원 생활안정기금’을 통해 생활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은 기금 목적인 ‘행정목적 달성이나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발표후 4개월이 흐른 현재 감사원 관계자들은 “지적이 있었던 만큼 고쳐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여전히 직원 사기진작을 내세워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1인당 1천만원, 연 3%라는 조건도 달라지지 않았다. 강남구청 총무과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이 있긴 했지만 구의회에서 만든 조례에 따라 조성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술 더 떴다. “우리 구청만 대출기금을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폐지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는 “경북도청에서도 유사한 기금을 운영하고 있으며, ‘공무원 후생복지 분야 우수사례’로 선정된 적이 있어 이를 뒤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사원 지적에 대해 오히려 억울해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경북도청은 1993년부터 무주택공무원 주택안정기금을 조성, 12년째 운영하고 있다. 연리 3%로 최고 2천만원까지 대출해준다. 규모는 59억여원.
도청측은 “중앙인사위원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인사 운영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참고하라’며 2000년부터 3년 연속 인사운영 우수사례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정부 내에서 한쪽(감사원)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다른쪽(중앙인사위)에서는 잘한 일이라고 부추기는 소극(笑劇)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측은 “각 기관에서 스스로 우수 사례라고 선정해 제출한 것을 자료집으로 만든 것일 뿐”이라며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는 것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공동기획‥함께하는 시민행동 www.action.or.kr
◇제보를 받습니다. (02)3701-1239budge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