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를 보고 투표하지 않습니다. 투표소가 가까우면 해야죠”

[미디어다음 -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기획] 투표에 어려움 겪는 장애인 100만 넘어



적지 않은 장애인들은 투표는 물론 외출도 힘든 상태다. 사진은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한 택시에 탑승하는 장애인.
ⓒ미디어다음 신동민


"투표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 신세져야”

“전동휠체어를 타고 투표하러 갔는데 계단만 있고 경사로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도와줘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80kg에 달하는 전동휠체어를 들어 옮길 때 참 미안하더군요. 그래도 시설이 좋은 학교에서 투표를 해서 좀 나았어요. 동사무소에 간 장애인들은 투표하는 게 더 어려웠을 겁니다.”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 강서초등학교의 투표소를 찾았던 장애인 김윤제(53)씨는 주위의 도움으로 어렵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대학생 고지혜(강남대)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고씨는 “투표소가 있는 동사무소의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부모님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여러 사람들에게 신세 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미안해진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투표를 통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본권을 행사하기에 앞서 투표소까지의 이동문제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앞선다. 투표소 입장에 성공해 기표소 앞까지 가더라도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는 기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현준(40) 간사는 “장애인들에게는 투표하러 가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며 “후보보다 투표소 위치가 투표 여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참정권에 대한 관심 높아져 … 정보소외 여전

장애인들은 지지후보를 정하기 위한 정보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선거 정보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기 일쑤다. 선관위가 3월 19일 후보자에게 점자형 선거공보를 제출할 것과 텔레비전 대담·토론회 등을 방송할 때 수화통역을 실시하도록 권장하는 내용이 담긴 장애인 투표 편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후보자와 방송사가 이를 실천할 지는 미지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12월 현재 청각장애인 12만6488명, 시각장애인 15만2857명, 지체장애인 81만3916 명이었다. 투표에 어려움을 겪거나 선거 관련 정보에 소외될 가능성이 높은 인구가 109만 명이 넘는 셈이다.


‘거소 투표제’를 아십니까


치료, 요양 또는 거주 문제 때문에 주소지를 떠나 있는 장애인들은 부재자 투표를 신청할 수 있다. 선거법에서는 “신체에 중대한 장애가 있어 거동할 수 없는 자는 통, 리 또는 반의 장의 확인을 받아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부재자 신청 절차를 거치느니 차라리 투표소를 찾는 게 낫다”며 부재자 투표 신청 과정의 불편함을 지적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집에서 투표할 수 있는 ‘거소투표’ 제도도 있지만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장애인이 적지 않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정선애 정책실장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장애자는 물론 등급별 모든 장애자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데도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 통, 리, 반의 장의 확인을 받도록 규정한 것은 불필요한 절차”라면서 “선관위 조사에서도 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또는 통, 리, 반의 장의 확인을 받기가 어려워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임시 조치가 아니라 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

다행히 최근 장애인의 투표소 접근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2002년 5월 대법원은 “국가는 투표소가 2층에 설치되어 있고 편의시설과 서비스도 없어 투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서모씨에 대해 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중앙 선관위는 “17대 총선에서 이동이 불편한 유권자들을 위해 '장애인용 기표대'를 모든 투표소(약 1만4000천 곳)에 1개씩 배치하고, 중증장애인을 위해 '투표활동 보조인지원제도'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선관위는 또 17대 총선을 앞두고 중증장애인에게 투표 안내서를 발송해 안방에서도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고 투표를 할 수 있게 조치했다. 그러나 취재진의 확인 결과 목 이하로 거동 할 수 없는 1급 장애인 ㄱ씨(30·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등 중증장애인들에게도 투표 안내서가 발송이 되지 않는 등 중증장애인 선정 기준와 우편사고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www.cowalk.or.kr) 김정렬 소장은 “최근 선관위가 장애인을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조치가 아니라 관련 법제도의 전면적 개정”이라며 “이번 선거에서는 선관위의 조치가 제대로 실천되는 지 지켜보고, 선거 후에는 장애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디어다음 / 신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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