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의 전체 예산 규모는 87조3천억원에 이른다. 정부 예산(일반회계 기준) 1백18조원의 74% 수준이다. 그러나 지방의회가 출범한 지 14년을 맞은 가운데서도 ‘풀뿌리 예산 감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12월18일 오후 원주시의회 예결특위 회의장.
“동의는 무슨 동의야.”
2005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동의안이 발의되는 순간 한 의원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유화규 위원장으로부터 경고와 함께 퇴장조치를 당했지만 계속 소란을 피우다 유위원장과 멱살잡이까지 했다. 시의회 관계자는 “읍면지역에 대한 농업용 수리시설 예산 5억4천만원이 삭감된데서 비롯된 일”이라며 “해당의원의 지역구가 농촌지역”이라고 전했다. 나흘뒤 시의회는 해당 의원에 대해 “술을 마시고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등 시의회 위신을 손상시켰다”며 ‘30일간 출석정지’ 결정을 내렸다.
또 예산안 심의에 앞서 원주 참여자치시민센터는 1백95억원의 예산삭감·절감을 요구했으나 58억9천만원이 삭감되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태장~행구동 구간 도로개설 보상비 1백억원(지방채 발행) 등은 그대로 통과됐다. 이선경 정책실장은 “태장~행구동 도로는 행정자치부로부터 ‘국도대체 우회도로 건설사업과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았던 사업인데다 주민 세금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 시의원은 “원주시 동부권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다수결 원칙, 즉 적법절차를 거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지역 예산에 대한 시의원들의 관심은 국회의원에 못지않다. 국회의 ‘지역주의’가 지방 의회에선 ‘소(小)지역주의’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정해진 심의 절차까지 무시된다는 점이다.
부산시의회의 경우 지난해 12월14일 예산안 계수조정 과정에서 의회 집행부와 예결특위 위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시의회 의장단이 계수조정 소위 위원장과 간사를 불러 별도로 조정 작업을 벌인 것. 대기중이던 소위 위원들이 “이렇게 할 바에야 소위를 왜 구성했느냐”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경륜공단 장외발매소 설치, 한국성씨연합회 지원 등 일부 쟁점 예산들이 통과됐다.
광주시의회에서도 예결특위에서 전원 합의로 삭감이 확정된 사업들이 다음날 의결을 앞두고 하룻만에 부활, 논란을 빚었다. 윤난실 의원(민주노동당)은 “계수조정까지 마친 수정내역이 번복돼 상무지구 게이트볼 경기장 증축비 등이 증액됐다”며 “예산삭감액이 0.06%에 불과하다는 것은 예산심의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다른 의원들은 “시 집행부가 사업타당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함에 따라 7명의 예결위원중 6명이 합의한 내용”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의회의 ‘제살림 늘리기’도 도마에 오르고는 한다. 대구시의회는 의회사무처 버스 구입(1억원)과 홍보영상물 제작(3천만원), PDP TV·DVD·소파 구입 등에 2억원가량을 책정했다. 군산시의회는 전·현직 시의원들로 구성된 의정회에 1천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참여자치 군산시민연대의 차태정 사무국장은 “의정회 설치·육성 조례가 지방재정법에 어긋나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태”라며 “반대 의견서까지 냈지만 무시됐다”고 말했다.
결산 역시 사후 인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무엇보다 회계 검사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보좌 기능이 갖춰져 있지 않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전국 250개 지방의회중 50개를 지역별·규모별·시군별로 추출, 결산검사위원 구성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34%인 17곳은 회계사나 세무사 등 관련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전무했다. 경기 연천·강원 평창·경북 영양 등 군 단위는 물론 강원 속초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시들도 끼어있었다. 전직 공무원이나 전직 지방의원, 농협 간부 등이 주류를 이뤘다.
서울시 결산검사위원인 이상근 회계사는 “웬만한 중소기업들까지 회계감사를 받는 세상 아니냐”며 “상당수 지자체가 전문적·독립적인 회계사를 통해 결산검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예산이 낭비될 소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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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감사 이름뿐 징계도 솜방망이 ]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집행을 일선에서 관리·감독하는 자체 검증은 제대로 되고 있을까.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감사는 이름만 있을 뿐 실제 기능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46개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14곳, 250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91곳은 별도의 내부 감사기구가 설치돼 있지 않다. 대신 기획감사실장, 공보감사관, 총무감사실장 등의 직함을 걸고 감사와 예산·인사·공보 업무를 함께 담당,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감사관의 인사권을 해당 기관 장(長)이 쥐고 있어 엄정한 감사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 순환 보직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온정주의’로 흐르기 쉽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외교통상부와 행정자치부는 감사관직을 ‘외부개방형’으로 바꿨지만 실제로는 내부 인사가 임명되고 있다.
경실련이 2000년부터 2002년 상반기까지 정보통신부와 교육부, 서울시 등 9개 정부기관의 감사실을 대상으로 자체감사 여부를 조사한 결과 본부 기관을 감사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징계 건수도 전체 적발건수 중 10%를 밑돌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자체 감사 결과를 재감사해보면 파면에 해당하는 데도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면직결정을 내리거나, 징계 대상임에도 그냥 넘어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예산낭비 행위로 적발돼 누수된 금액만큼 환수하라는 처분을 받고도 즉각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 우윤근 의원에 따르면 2000~2004년 6월까지 환수처분이 내려진 8천5백84억원 중 국고로 환수된 액수는 5천71억원으로 환수율이 59%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종합적인 감사 기능을 수행하는 감사원 감사 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감사원이 2003년도 피감기관을 직접 방문해 감사를 실시한 곳은 983개로 전체 감사대상(6만3천여개)의 1.6%에 불과하다. 이 실지 감사에 연인원 13만여명이 동원됐지만 피감기관당 감사일수는 평균 10~15일에 그쳤다. 감사원은 “정원(892명)에서 기능직과 간부직 감사관을 제외하면 실제 감사인력은 500여명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감사원도 최근 내부 재무교육에서 ▲한정된 사업 중심의 감사 ▲개별 지적 사항 위주의 나열식 결산검사보고 ▲행정기관의 재정 운용에 대한 평가기능 취약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감사결과 역시 1회성 적발에 치중돼 있다. 잘못 집행된 예산을 강제로 환수토록 처분하는 변상판정과 시정 요구는 전체 처분요구 사항중 20% 정도에 머물고 있다.
감사결과를 예산편성에 반영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 도입한 정부기관간 예산반영협의회도 연간 4,000여건이 넘는 지적사항 중 60건만 선별, 논의하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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