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법과 독립기구, 허수아비로 전락할까 우려된다
어제 정부여당이 당정협의를 통해 개인정보보호기본법안을 합의했다. 이로써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였던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의 연내 제정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합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개인정보 침해를 근절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럽다.

아직 법안의 전문이 발표되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열린우리당이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는 국가인권위 산하에 개인정보보호기구를 설치하되 각 정부 부처가 법률에 따라 소관 분야의 개인정보 사무를 처리하도록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제정하고 독립적 개인정보보호기구를 마련하고자 한 취지는 기존 정부부처들이 개인정보 보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왔다는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기존 부처들이 개인정보 보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직접 대량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혹은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산업들을 육성하는 것을 고유 임무로 하는 부처들이 개인정보 보호 임무도 함께 맡고 있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은 각 부처의 소관 법률과 사무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정보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 정부
부처들간의 관계를 볼 때, 행정자치부는 다른 부처 소관의 공공기관이 구축하는 개인정보 시스템에 대해 보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지난 NEIS 논란 과정에서 행정자치부가 보여준 모습이 단적인 예라 하겠다. 게다가 각 부처가 소관 분야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법률과 기구를 유지하게 되면, 정작 새로 탄생할 기본법과 보호기구는 허수아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인권위원회 산하에 개인정보 보호기구를 설치한 점도 개인정보 침해 근절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 정부부처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왔다. NEIS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교육부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다가 시민사회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교육정보화위원회가 구성되고 나서야 수용되었다. CCTV 운영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역시 전혀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남구청과 강남경찰서는 CCTV 관제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산하에 개인정보 보호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기구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들의 권한과 기구를 온존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우려된다.

이런 체계는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 및 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기구와 각 부처가 각각 집행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사업자들은 이중 규제로 인해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연적으로 규제를 일원화해달라는 요구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의 개선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당정협의 내용에 따르면, 이 법에 따른 처벌은 최고 징역 3년 또는 3천만원의 벌금에 불과하다. 이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의 개인정보 관련 최고형인 징역 5년 또는 5천만원의 벌금 조항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기본법으로서의 위상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개인정보 침해 근절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개인정보보호 제도로는 침해로 얻는 이익에 비해 처벌이나 손해배상이 너무 가벼워 개인정보 침해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집단적 권리구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당정협의는 시민사회단체가 제안해온 집단소송의 도입을 수용하지는 못할망정,
단체소송권이나 집단분쟁조정 등의 절충안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은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원칙한 절충이나 나눠먹기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시민사회가 이 법의 제정을 요구해온 것은 우리 사회가 정보화 선진국의 위상에 걸맞게 개인정보 보호 역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걸맞는 법률을 제정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의지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별도의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활동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년간의 연구를 통해 마련한 법안이 이미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남아있는 법안 제출 및 국회 심의 과정에서라도 정부여당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제안에 열린 자세로 임해주길 당부한다.

2004년 12월 10일

프라이버시법제정을위한연석회의
(문화연대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 지문날인반대연대 /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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