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라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초록나무가 시민행동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했어요. 지난 3/1-3/3 사흘간 열린 나팔꽃 공연에 초대한 거였지요.

호호... 나팔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 나팔꽃 그림을 클릭해보시라고 대답하겠나이다. 굳이 설명을 해 보자면 시인과 가수가 한데 모여 시노래를 만드는 모임이랍니다. 예전엔 매달 정기공연을 했었는데, 한동안 공백이 있은 후 이제는 계절마다 하는 공연으로 컴백^^하였다고요. "작게 낮게 느리게"라는 나팔꽃의 타이틀에 "빈주머니"라는 주제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새봄 첫 공연.

자... 우리는 이 안건을 사무처회의에 올려 ^^;; 진지하게 의논을 하였습니다. 이왕이면 다함께 가서 같은 자리에서 공연을 즐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참 어찌나들 공사다망한지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제는 핫챵과 푸른소라는 매우 묵직한 팀이 (평균연령 40 이상), 그리고 또 어제는 가뤼, 무인, 변두리, 그리고 또 한명(비밀입니다, 효효)으로 매우 발랄한 팀이 (평균연령 30 이하) 꾸려져 따로따로 구경을 가게 되었더랍니다.

먼저 공연을 다녀온 소감을 묻자, 핫챵은 딱 이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참 따뜻한 공연이더구만."

네... 역시나 그랬던 겁니다. 참 따뜻한 공연.

변두리가 갔던 공연은 이번 봄공연의 마지막회였습니다. 해는 이미 지고 날씨는 쌀쌀한 가운데 대학로 한켠, 철골과 시멘트벽에 뜯어내지 않은 낡은 타일이 군데군데 그대로 붙어있는 설치극장 정미소에는 2층까지 빈자리도 하나 없이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시작도 하기전에 공기는 이미 따뜻해져 있었지요. 고요한 무대 앞쪽에는 나무 한그루 구석에 서 있고...

촘촘이 부드럽게 반짝거리는 벽면을 뒤로 하고 먼저 등장한 나팔수 홍순관님의 비단결같은^^;; 목소리.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the 林(그림 이래요)의 흥미롭고 신선한 연주곡들이 시작되었지요. 젊은 친구들이 연주하는 피리, 해금, 거문고, 가야금, 기타, 베이스, 드럼... 이들의 전혀 새로운 어울림이 참으로 흥겨웠습니다. (참고로 가뤼는 해금을 연주하던 분이 너무나 귀여우셨다고 @.@)

다음으로 기타 하나 들고 성큼성큼 나타난 안 모, 가수께서는 늘어지는 기타줄을 잡아매느라 첫번째 침묵의 시간을.. 그리고 심혈을 기울인 신곡을 들려주다 딴생각에 잠기는 바람에 두번째로 침묵의 시간을 선사하여 주었답니다. 호호. 너무 가위질을 해서 정작 그 시를 지은 시인은 싫어한다는 노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들을때는 늘 한결같은 그 목소리가 그렇게 정다울 수 없었답니다.

시란 자고로 글이 아니라 소리라고 하지요. 시는 머리속으로 읽을때보다 소리내어 낭송할때에 생명력을 지니는 법이라고요. 더구나 시를 쓴 사람이 직접 읽는 것이라면... 조심조심 무대로 나온 정희성 시인과 정호승 시인이 세 편의 시를 낭송해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시...

태백산행/정희성

눈이 내린다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 일곱살이야 열 아홉 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 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때다 좋을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그리고 나팔꽃 식구들과 함께 하는 노래부르기^^ 젤루 신나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소리내서 노래부르는 것. 노래방에서 말고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큰소리로 노래하는 게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일인지는 정말 해본 사람만 알죠.

무대 위에서 내지르고 휘두르는 그런 공연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웃음지으며 관객과 같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자리. 빈마음으로 빈주머니로, 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좋은 공연. 아... 운동이라는 것도 이런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변두리는 참 맑은 마음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시민행동 사람들 평소에 문화생활도 못하고 지낼까 하여 마음 써주신 초록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잘 보았습니다아~

덧붙여 무궁화꽃 공연.. 등등 다른 일정으로 못 갔던 식구들은 후회하실 지어다. 효효.
ġ ϴ ൿ! Բϴ ùൿ ȸ ȳ

댓글 '8'

스케치

2004.03.04 09:00:00

갑자기 70년대 명동카톨릭여학생회관이던가..기억이 가물하지만 해바라기공연이 떠오르네요. 나팔꽃..무궁화.... 꽃이름이 나열되는 가운데 봄을 느끼고싶은데, 눈이 오다니 것도 폭설같은 눈이... 글 잘 읽고 갑니다.

바람이

2004.03.05 09:00:00

효효....라... -_-;;;
여튼 이런공연이 더욱 많았으면 좋겠구랴..
나같은 사람도 좀 보게 ^^

변두리

2004.03.05 09:00:00

스케치님...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기 무궁화꽃 공연은 실제 공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저온개그였답니다. 호호...^^;; 그런데 명동카톨릭여학생회관이라는 이름의 공연장이 있었나보네요.

변두리

2004.03.05 09:00:00

바람이.. 어제 눈내리니 또 호빵 얘기가 나오더이다. 누나는 이제 담주부터 안나오신다오.

바람이

2004.03.05 09:00:00

헉 ㅠ.ㅠ

스케치

2004.03.05 09:00:00

변두리님, 명동카톨릭여학생회관은 공연장은 아니였구요, 그곳에서 여러가지의 모임들을 가질수 있었던 회관였답니다. 이정선 이광조 이주호 한영애 김영미의 해바라기 공연은 구석진 해바라기싸롱이란 작은 방에서 관객 스무여명이 함께 노래부르고 차를 마시는 그야말로 "따뜻한 공연"의 시초가 아니였던지 싶어요. 그 옆방에선 참새를 태운 잠수함이란 노래모임이 있었답니다. 전 그때 고삼였지요..... 나팔꽃 공연,,, 끝났다고 하지만 너무 보고싶어지는군요. 언제 기회가 있겠지요?

핫챵

2004.03.05 09:00:00

나팔꽃 공연..절기별로 있습니다. 6월이 오면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무렵 에피소드를 찾아오시는 분들 함께 가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음..그때 가봐야 알려나..

푸른소

2004.03.05 09:00:00

맞아요. 저는 핫창과 같이 보았지요. 그리고 예상했던데로...
공연 열심히 보면서
"여기가 몇 석되겠지?"
"한 130-40석 정도"
"이런 따뜻한 자리를 우리도 만들어야 되는데..."
"가을에는 되겠지요"
.......

"이지상씨 재주가 많아 보이네요?"
"정말 공 잘찮다"
아 40대 공연 관람 분위기 였습니다.

그래도 참 편안한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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