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 광고하면 뭐 합니까. 투표할 방법이 없는데…”

[미디어다음 -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기획] 일용직, 비정규직 등 참정권 침해 심각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들 구경하기조차 힘든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바로 건설 현장입니다. 어차피 현장 사람들은 투표를 못해 표가 안될 것 같으니까 후보들이 알아서 안 옵디다.” 한 건설 노동자의 푸념이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각 시민단체는 투표율 하락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선거에서 소외되고 있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6조와 근로기준법 9조, 113조에서는 유권자의 선거권 행사를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일용직 고용이 일반화된 건설현장, 대형 백화점 및 할인매장, 운송업과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경우에는 투표참가가 어려운 실정이다.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은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일당을 포기해야 한다. 육상, 수상, 항공 등의 운수업 종사자는 업무 특성상 선거당일 쉰다는 보장이 없다. 임시근로자는 사업주가 정상근무를 하며 투표할 시간을 보장하지 않아도 불안한 신분 때문에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초 민주노총은 투표 당일 시간을 내지 못해 투표 참여가 어려운 노동자 수가 13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투표 참여를 가로 막는 장벽들…



지하철 기관사 등 운송 노동자들도 별도의 제도적 배려 없이 교대근무에 임해야 하므로 투표 참가가 쉽지만은 않다. 사진은 근무 중인 지하철 기관사. ⓒ미디어다음 김진화


노동계는 현행 선거법에서 투표일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은 점을 투표권 행사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고 있다.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관공서와 정부투자기관에만 유급휴일 규정이 일괄 적용될 뿐 민간기업의 경우 단체협약 등으로 노사간 별도 합의가 이루어져야 유급휴일이 된다. 사업주가 투표일에도 나오라고 하면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 중앙선관위가 지난 15대 총선 후 실시한 유권자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직장에 출근한 기권자가 전체 기권자의 12.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시간도 문제다. 적지않은 노동자들이 투표일 근무에 나서지만 현행 투표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로 제한돼 있다. 퇴근 후에라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봉쇄돼 있는 것.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투표시간을 밤 9시까지로 연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사람만 부재자로 인정하는 현행 부재자투표 제도도 근로자의 투표를 막고 있다. 선거 당일 불가피한 근무, 출장 등으로 인해 주소지에서의 투표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노동자의 경우 부재자 투표를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부재자투표 신청 절차도 복잡하다. “부재자 투표하면 이틀을 공쳐야 한다”는 비아냥을 사고 있다.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불합리한 선거법부터 고쳐야”

민주노총 산하 건설산업연맹은 170만 건설 노동자 대부분 투표 참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명선 정책부장은 “지난 2002년 지방자치 선거 때부터 선관위와 건설협회 등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등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선거법 개정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산업연맹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이민규 변호사는 “건설 노동자들의 경우 생존권과 참정권을 놓고 배타적 선택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면서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한편의 권리는 침해 받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현행법은 명백히 헌법 정신에 위배 된다”고 지적했다. 건설연맹은 선거법에서 선거일이 유급휴일로 명시될 수 있도록 민주노총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문제는 눈앞에 다가 온 이번 총선이다. 법률 개정이 당장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상당 수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장기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한편 이번 총선을 겨냥해 ▲공단 중심의 홍보활동 ▲사업주의 부당행위 실태조사 ▲선관위, 노동부, 경총 등 유관단체에 투표 참여 보장 촉구 등의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에 실질적 효과를 가져 올 묘책이 없다는 게 민주노총의 고민이다.

2004년 2월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 172만명, 운수업 종사자 110만 8,000명, 일용직 근로자 205만 3,000명, 임시직 근로자 504만 4,000명으로 안정적으로 참정권을 행사하기 힘든 처지에 놓인 노동자가 천만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날 비싼 광고비 들여 투표 참여 하라고 하면 뭐합니까. 우리 건설 노동자들은 모이면 정치 얘기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관심은 많은데 투표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오히려 선거 때면 정치 얘기가 쑥 들어갑니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 참여하게 해주는 것부터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건설 노동자 김봉규(50, 송파구 거여동)씨의 따끔한 충고다.

미디어다음 김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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