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하고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후원하는 연속기획 <<헌법 다시보기>> 그 두 번째 순서인 <평화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가 24일(수) 오후 2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당에서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는 이대훈 처장이 제안한 인권으로서의 평화 개념과 이경주 교수가 제안한 평화적 생존권을 중심으로 헌법에서 평화의 이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다.
<헌법 다시보기> 연속 기획은 지구화·정보화 등의 거대한 변화와 성·생태·평화·문화 등 시민사회의 새로운 가치들이 부상하는 가운데, '헌법'을 매개로 하여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반인도적 범죄 공소시효 배제, 평화적 생존권의 도입 등 다양한 헌법적 제안
<평화주의 헌법을 위한 인권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대훈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평화를 전쟁이나 대외 군사활동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협소하다고 지적하면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국가의 폭력에 의한 시민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자는 광의의 평화주의를 제안했다. 그는 특히 '국가안보'에 대한 주장이 '죽음의 공포'를 제기하는 협박적 행위이자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폭력이 증가하는 상황을 정당화하는 논리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구체적인 헌법적 제안으로 '반인도적 범죄'를 대량학살, 전쟁범죄, 침략 등과 동등하게 규정하고 공소시효를 배제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그로 인한 배상책임 및 피해의 구조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예컨대 베트남인들이 베트남전에서의 양민 학살에 대해 한국정부에게 배상 책임을 주장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해석의 복수성을 인정하고 정당성이 의심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동의에 의해서만' 동의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즉, 이라크 파병과 같은 경우 참전 대상 병사들이 그 정당성에 관한 논란을 충분히 인식하고 동의했을 경우만 참전 의무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어서 인하대 법대의 이경주 교수는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 그 가능성과 한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세계 여러 나라 헌법의 평화주의 조항들을 유형별로 분류해서 분석하고, 이어 우리 나라 헌법의 평화주의의 현실태와 의의 및 한계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토론자들로부터 평화주의 헌법 논의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학문적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평화주의를 구체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기본권을 헌법상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평화적 생존권은 전쟁이나 군대, 군사적 목적으로 인해 생존권이나 기타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라고 정의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부당한 징병이나 징발을 거부할 수 있게 되며 혹 피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한 제3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한 제4조, 양심적 병역거부를 명시하지 않은 제39조 등의 조항들을 비판했다.
토론에 나선 권김현영 언니네트워크 편집장은 "여성과 소수자들에게는 일상이 전쟁"이라며, 국가간 혹은 국가로부터의 폭력 뿐 아니라, 일상적 영역에서의 폭력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시급함을 지적했다. 아울러, 이대훈 처장의 발표 중 인간안보, 환경안보 등의 개념이 국가안보 개념의 협박의 정치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 "빈곤, 환경, 성차별 등의 이슈는 의도적으로 은폐되어왔"으며 "문제는 안보의 인플레화가 아니라 안보개념의 군사적 독점"이라고 반론을 펼쳤다.
반면 고려대 행정학과의 김선혁 교수는 인권을 평화의 전제조건이라고 자리매김하는 것은 미국 네오콘의 사상적 기초 중 하나인 민주적 평화론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으며, 대내적 민주화나 인권 보장과 대외적 평화 사이의 필연적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그는 탈냉전 시기의 확산·다차원화된 안보 개념이 안보 담론의 약화/극복을 의미하지 못했다며 이대훈 처장의 논지에 동조했다.
마지막으로 영남대 법대 정태욱 교수는 '개개인의 진실'을 평화의 기초로 내세웠다. 그는 "국가의 권위를 개개인의 진실과 신념을 그대로 존중하는 데에서 구하는 체제야말로 '평화민주공화국'"이라며, 그 중요한 판단 기준의 하나로 (대체복무의 허용이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 그 자체의 인정을 들었다.
이 날 공개토론회의 자료집 및 보도자료, 토론자들의 토론문은 첨부파일을 내려받으면 볼 수 있다. 한편, 26일(금)에는 제3회 <여성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장소 : 연세대학교 박물관 시청각실) 토론회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