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라살림 규모(통합재정 기준)가 1백80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예산의 편성에서부터 심의·집행·결산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검증장치가 없다. 그러다보니 낭비되거나, 엉터리로 쓰이는 사례 등이 해마다 되풀이돼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경향신문은 예산감시 분야에서 활약해온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으로 장기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론 안된다’를 싣는다.

[예산 대해부]Ⅰ-2. 흙더미에 묻힌 혈세

[경향신문] 2004년 09월 14일

강원 태백시를 가로지르는 상장~소도간 4차로 도로. 4.36㎞ 길이의 이 도로가 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산업자원부에서 폐광지역 특별지원금으로 내려보낸 3백억원으로 4년간의 공사끝에 완공됐다. 화려한 테이프 커팅 행사라도 해볼 만하건만 3개월이 지나도록 준공식은 열리지 않고 있다.

도로를 타고 2㎞쯤 달렸을까. 문곡소도동 앞 도로에 이르러 갑자기 4차로 도로가 2차로로 좁아졌다. 길이 뚫린 지 열흘 만에 도로 사면이 붕괴됐다. 이때 쏟아져 내린 흙더미에 도로가 파묻혀 500m가량의 통행이 부분 통제되고 있었다. 절개지에 흉물스런 철제빔을 수 없이 꽂고, 두꺼운 시멘트 옹벽을 2중, 3중으로 둘러쳤지만 역부족이다. 산 꼭대기에서 밀려 내려오는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시멘트 옹벽엔 틈이 벌어져 있다. 옹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널찍한 철골 지지대들을 받쳐놓았다. 산의 나무들도 일제히 앞으로 기우뚱 쏠려있고, 송전탑도 착공 후 두번이나 위치를 옮겼지만 계속 기울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산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다. 산 중턱에 있는 함태초등학교도 마찬가지. 운동장 계단에는 어른 손이 쑥 들어갈 정도로 균열이 생기고 있고, 교실과 복도 여기저기에는 균열 상태를 진단하기 위한 게이지(측정기)가 붙어 있다. 교사 김영호씨(40)는 “교실 두채의 벽이 갈라지기 시작해 아예 철거해야 했다”며 “비가 오면 도로와 연결된 등굣길이 무너질까봐 도로 반대쪽의 임시 통학로로만 다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태백시가 4차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충분한 지질조사 없이 무작정 산을 깎아 도로를 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로 깎아낸 산의 토양은 붕적층. 암반이 아니라 모래와 자갈이 절반씩에 가까운 지질이다.

“애초에 붕적층인 산을 깎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였죠. 줄줄 흘러내리는 토양을 마구잡이로 깎아버렸으니 흙들이 빙하처럼 대이동하는 거예요.”(태백시민연대 허신학 사무국장)

서울산업대 토목공학과 박종관 교수는 “붕적층의 경우 촘촘히 구멍을 뚫고 사전검사를 해야 하지만, 조사용역비를 아끼기 위해 구간을 넓게 잡고 조사하면 실제 결과가 용역내용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태백시는 “붕적층이란 사실은 우리도 알았지만 이렇게 심하게 무너질지 누가 예상했겠느냐”며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시의회측에서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공사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공사가 시작된 2000년 당시 태백시의회 의장이었던 김영규씨는 “담당 공무원이 ‘지질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며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고 개탄했다.

태백시는 현재 산의 붕괴를 막기 위해 H철빔을 37m 깊이까지 박고 지름 50㎝의 쇠말뚝을 함께 박은 뒤 다시 H철빔을 박고, 그 위에 시멘트 모르타르를 부어 고정시킨다는 복잡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추가로 들어가야 할 비용은 도로를 만드는 데 쓴 돈의 절반인 1백50억원.

시청측은 보강공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산업자원부에 자금지원을 추가로 요청해놓은 상태지만, “갓 준공한 도로에 왜 보강공사가 필요한지 원인을 보고하라”는 답변이 돌아오자 다시 지방채 발행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발이 심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별취재팀 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 본 기사는 시민행동 - 경향신문 공동기획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론 안된다> 중 2번째 기사입니다.
ġ ϴ ൿ! Բϴ ùൿ ȸ ȳ
List of Articles

예산대해부 - 흙더미에 묻힌 혈세 성명/논평/보도자료

올해 나라살림 규모(통합재정 기준)가 1백80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예산의 편성에서부터 심의·집행·결산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검증장치가 없다. 그러다보니 낭비되거나, 엉터리로 쓰이는 사례 등이 해마다 되풀이돼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경향신문은 예산감시 분야에서 활약해온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으로 장기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

  • 시민행동
  • 조회 수 1327
  • 2004-09-16

KT 소디스, 가입절차 및 약관 변경하기로 성명/논평/보도자료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9월 1일 KT 소디스 사업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에 관해 의견서를 보낸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14일 KT에서 시민행동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약속해 옴에 따라, 아래와 같이 그 내용을 공개합니다. 시민행동은 KT의 개인정보 보호 체계와 관련하여 크게 다섯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의견서 전문 보기) 이 다섯 가지의 문제점에 대하여...

  • 시민행동
  • 조회 수 1100
  • 2004-09-16

KT 소디스, 가입 절차 및 약관 변경하기로 [1] 성명/논평/보도자료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9월 1일 KT 소디스 사업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에 관해 의견서를 보낸 바 있습니다. (의견서 전문 보기) 이에 대해 지난 14일 KT에서 시민행동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시민행동은 KT의 개인정보 보호 체계와 관련하여 크게 다섯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문제점에 대하여 KT는 다음과 같이 수용할 것을 약속했습니...

  • 시민행동
  • 조회 수 2729
  • 2004-09-16

시민행동 의견서에 관한 KT 소디스 측의 답변 성명/논평/보도자료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소디스 사업의 고객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의견서에 대한 답변 1. 안녕하십니까? 정보화 사회의 발전을 위한 귀 단체의 관심과 활동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 KT 소디스는 정보화 사회로의 발전에 따라 소디스 사업을 통해 소비자, 기업, 사회 및 경제가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본 사업은 매년 7천억원 이상에 달하는 ...

  • 시민행동
  • 조회 수 2267
  • 2004-09-16

버마 '국민의회대표위원회'의 굽힘없는 투쟁을 지지하며 [2] 성명/논평/보도자료

오는 9월 16일은 버마 '국민회의대표위원회'(Committee Representing the People's Parliament, CRPP) 창립 6주년 기념일입니다. 이에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아시아지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인권상황에 놓여있는 버마의 현실에 주목하는 국제민주연대 등 총 45 개 단체들과 함께 CRPP의 굽힘없는 투쟁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합니다. * 사진...

  • 시민행동
  • 조회 수 1948
  • 2004-09-15

분류

전체 (2330)

최근 글

최근 덧글

일정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