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라살림 규모(통합재정 기준)가 1백80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예산의 편성에서부터 심의·집행·결산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검증장치가 없다. 그러다보니 낭비되거나, 엉터리로 쓰이는 사례 등이 해마다 되풀이돼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경향신문은 예산 감시 분야에서 활약해온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으로 장기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론 안된다’를 싣는다. 편집자주

미시령에서 속초 시내로 접어드는 초입에 있는 속초시 노학동 ‘노리교’.

청초천 위를 가로지르는 길이 54m, 폭 25m인 중형급 교량이다. 왕복 4차선의 교각 상판은 아스콘 포장이 돼 있고 인도에는 보도블록이 정갈하게 깔려 있다. 작은 하천 위에 놓인 다리치고는 외관도 훌륭하고, 널찍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은 눈에 띄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다리 한쪽 끝에는 텔레비전 크기만한 바위 10여개가 띄엄띄엄 흉물스럽게 놓여 있다. 그 위로는 ‘위험! 접근금지’라는 표지가 달린 줄이 출입을 막고 있다. 반대쪽 끝 다리는 지표면에서 3m 가까이 떠있는 채로 끊겨 있다. 인접 도로와 연결되려면 흙을 쌓는 공사를 추가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은 거대한 설치예술 작품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통행이 불가능한, ‘못쓰는 다리’이지만 주민들은 별 불편이 없다는 표정들이다. 불과 30~40m 옆에 다리 하나(응골교)가 또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전부 논밭 아이라요. 여기에 무슨 사람이 많이 댕긴다고 또 다리를 맨드는지….” 응골교 주변의 식당 주인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노리교는 1년4개월간의 공사 끝에 지난 6월 완공됐다. 공사비 30억원은 2002년 태풍 ‘루사’ 피해에 따른 추경예산에서 내려왔다. 애초 노리교에서 500m 위쪽에 있던 신흥교 복구를 위해 지원된 것이었다. 주민들은 “신흥교를 다시 세워 사람이 다니게 하면 모르겠지만, 무엇 때문에 응골교 쪽에 바싹 붙여 새 다리를 놓았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속초 시청을 찾았다. 담당자는 “전체 다리 개수가 수해 이전과 같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며 “도시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금시초문의 ‘도시계획’이란 말에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도시계획서 열람을 요청했다. “도시계획이 아직 구상 단계여서 심의위원회에서 확정한 서류 같은 것은 없고요. 아이디어 차원에서 미리 지은 것인데… 예산이 확보되면 연결 공사를 재개할 계획입니다.” 재원확보 방안이나 공사재개 시기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고 했다. 속초 경실련은 “노리교 인근 토지를 일부 공무원 가족이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진상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남 고흥군 신금리의 뻘금선착장. 애초 이곳에는 선착장이 없었다. 그런데 태풍 라마순 때 당시 군의회 의원의 사유지이던 이곳에 선착장이 있다가 유실된 것으로 피해 보고가 올라가 복구비 1억여원이 내려왔다. 1차 피해 신고 때는 보고조차 안됐다. 피해 진위를 재확인하는 2차 조사 과정에서 슬그머니 리스트에 올랐다. 방법은 간단했다. 행정자치부의 피해 접수 담당자가 고흥군 현지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확정보고서에 반영되도록 하라”고 요구한 것이 전부였다. 허위사실을 담은 보고서가 제출됐고, 이렇게 받은 복구비는 군의원이 ‘개인 선착장’을 만드는 데 썼다.


기초 공사까지 들어갔다가 지역 시민단체에 의해 들통이 나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공사는 중단됐다. 해당 군의원과 행자부·고흥군 공무원은 업무상 배임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됐다. 고흥군 관계자는 “숙원사업을 위해 다소 과다하게 예산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고흥민주단체협의회 임규상 대표는 “사유지에 선착장을 만드는 것이 숙원사업이냐. 복구 공사를 한 지 1년 만에 무너지는 선착장이 생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해복구비가 지자체들의 ‘돈잔치’에 흥청망청 쓰여지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반성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권석천차장 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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