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은 '정치개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 정치권의 행태를 보는 국민들은 가히 울화병에 걸릴 지경이다. 여야 할것없이 한 목소리로 정치개혁을 외치던 것도 잠시, 막상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이하 정개협)가 정치개혁안을 마련하여 제출하자 정치권은 합심하여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사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잘 알고 있다'며,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공언하던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설마 이처럼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느끼지 못하는 듯 노골적으로 잇속 챙기기에 나설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현실을 믿기 싫을 지경이다. 우리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암담하다.
정쟁에 골몰하느라 민생현안을 팽개치고 '식물국회'를 만들더니, 간신히 국회를 열자마자 이런 일이나 벌이고 있는가. 차라리 다시 국회 문을 닫으라고 요구하고 싶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정개협의 정치개혁안을 과연 정치권이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 혹 '물타기'를 하여 개혁안의 핵심을 흐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시민단체 등 국민들은 막상 정치권이 속내를 드러내자 엄청난 당혹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정치권의 정치개혁 약속은 애초부터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며, 작정하고 온국민을 우롱했다고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안을 마련한 정개협 주요인사들도 최근(23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 정치개혁특위(이하 정개특위)가 당초 약속과 달리 정치권에 불리한 조항은 대부분 외면함으로써 결국 개악된 정치관계법이 탄생할 우려가 크다'며 정치권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 바 있다.
정개협이 마련한 정치개혁안 중 ▲후원금 영수증 선관위 제출 의무화 ▲당원 행사에서 식사 및 교통편의 제공 금지 ▲선관위 조사권 강화와 선거부정 내부고발자 보호 등은 정치부패를 척결 등 정치개혁을 위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핵심사항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방안이 국회 정개특위 논의과정에서 대부분 무시되거나 변질되어 가고 있다.
당초 정치권이 국민 앞에 약속한 대로라면 정개협에서 마련한 정치개혁안은 핵심내용 그대로 수용해야 하며, 설사 조정이 불가피한 사항이 있다 하더라도 본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정개협 등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쳐 결정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은 아무런 합당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약속을 내팽개치고 대다수 국민의 거센 분노의 소리를 외면한 채 도리어 정개협 안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의 '정치개악'을 자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국회 정개특위는 즉각 현재의 논의를 중단하고, 정개협이 마련한 당초의 정치개혁안에 충실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라. '정치개악' 을 시도하고 있는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국민에 대한 정치개혁 약속을 지킬 것인지, 약속을 어기고 국민 분노와 맞설 것인지 양자택일하라.
아마도 정치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심 '또 저러다 말겠지' 하며 국민의 분노를 가벼이 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충격과 분노가 너무 크기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 분노와 불신은 앞으로 정치권이 감당해야 할 크나큰 숙제가 될 것이다. 끝.
2003. 12. 25
「시 민 행 동」
공동대표 이필상 정상용 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