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덕홍 신임 교육부총리가 전국단위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강제 시행을 일단 중단하고 문제점 파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신임 교육부총리의 민주적 교육개혁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발표를 기점으로 교육인적자원부와 다른 모든 교육 주체들이 NEIS로 인해 빚어진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기대합니다. 더불어 향후 논의에 있어서 아래와 같은 진단과 방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진 : 오마이뉴스>
첫째, NEIS 문제의 근본 원인은 교육부의 독단적 행정입니다.
NEIS 문제의 근본 원인은 교육부의 독단적 행정에 있었습니다. 교육부는 지난 2년간 전교조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인권 침해와 예산 낭비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NEIS 도입을 결정하고 추진을 강행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안내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다양한 교육주체들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 및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쳤다면 현재 제기되는 문제점 중 상당 부분을 사전에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민행동은 지금까지의 독단적 교육행정을 탈피하겠다는 뜻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교육부총리의 이번 발표를 환영합니다.
둘째, 교육정보화는 모든 교육 주체들의 합의를 통해 추진되어야 합니다.
NEIS 문제는 단순히 행정정보화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 문제, 교육주체들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업무 통제 문제, 교육의 자주성과 교육 자치 문제 등 다양한 가치들이 연관된 문제입니다. 때문에, 향후 NEIS의 수정 보완 과정은 단순히 갈등의 양쪽 주체들이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는 과정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교육의 상에 비추어 교육 정보화의 총체적 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하며, 따라서 모든 교육 주체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바람직한 교육과 인권의 보호라는 기준 하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할 것인지, 수집된 정보 각각에 대해 누가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시민단체 등 다양한 교육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셋째, 교육정보화 추진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합니다.
프라이버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정보는 수집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기관에서 관리해야 하며, 다른 기관에 제공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은 보유기관의 장이 개인정보를 다른 기관에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중등교육법은 학생생활기록부 등의 학생정보를 학교장이 관리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진행된 NEIS의 학생 정보 수집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향후 논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추진할 때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만일, 논의 과정에서 일부 학생정보를 교육청 단위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더라도, 그와 관련된 법적 근거를 마련한 후에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현재 NEIS에 수집된 개인정보는 활용되지 않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NEIS의 개인정보 수집은 그 자체로 현행법상 불법 행위임에도, 교육부는 일선 학교가 보관하던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이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80%가 넘는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이미 교육청으로 이관된 상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NEIS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NEIS에 이관된 기존의 학사 영역 개인정보들은 원칙적으로 폐기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향후 논의 과정에서 일부 정보들이 NEIS 입력 대상 정보로 규정된다면, 2중 입력으로 인한 행정 낭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교무·학사 정보가 입력된 서버들을 봉인하여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보관토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정보 인권, 특히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정보사회 도래에 따라, 이전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의 전자화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번 갈등 역시 기존에 수작업으로 작성된 개인정보들과 전산화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이번 갈등을 계기로, 정보화 시대의 인권, 특히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갈등의 당사자인 교육부와 전교조에 부탁합니다. 정보화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를 살아갈 미래 세대들이 정보 사회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 특히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교과 과정 개편과 교안 마련에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향후 전자정부 추진에서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NEIS로 인한 갈등은 상당한 예산과 행정 낭비를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자정부 추진 과정의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이 교육부의 독단적 행정에 있었음을 돌이켜볼 때, 전자정부 추진과정의 민주화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규모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을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최소 수백억 이상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대형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의 상당수가 공청회 같은 최소한의 의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대부분의 행정정보시스템이 방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 과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번 갈등이 불행한 일이었음에도,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보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한 층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정보화'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갈등을 계기로 정보화되어야 할 것과 정보화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교육계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이번 갈등의 교훈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 시 민 행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