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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지방자치 선거는 지역의 살림을 책임질 단체장과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이다. 각 후보자들의 "공약(公約)"은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어 버린다. 또한 시민들의 뜻을 대신해 지역에 필요한 사업의 우선순위를 따지고, 제대로 예산을 집행하는 지를 감시하는 역할은 "의회" 의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는 영예(?)의 밑빠진 독상 수상 면면을 보면 실로 어처구니없는 예산낭비나 선심성 사업을 통해 살림을 거 덜 낸 지방자치단체가 많다. 지난 2000년 8월부터 올 5월말까지 모두 19번의 밑빠진 독상이 수여되었는데 이 중 8번은 지방자치단체 혹은 지방공사에 영예(?)가 돌아갔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공적자금과 (재)천년의 문의 천년의 문 건립사업, 국회의 전자 투표장치 사업, 한국과학재단의 전문 경력인사지원제도, 근로복지공단의 가산세 납부, 산업자원부의 산업기술재단 지원금 등을 제외한 나머지 13개 사업들은 모두 지역적인 연고가 있는 사업들로 지자체 사업과 낭비성격이 유사하다. 예산낭비라고 지적되는 사업들의 예산규모를 보면 (공적자금을 제외하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른다.
이렇게 밑빠진 독을 통해 낭비된 재정손실은 당대를 넘어 후손들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러한 예산낭비에 대해 책임을 졌다는 지방자치단체는 없다. 현상적으로 재정투자 잘못의 책임은 단체장이 정치적으로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이 낸 세금을 공공서비스로 되돌려 받지 못하는 지역주민들이 모두 떠 안는 것이다.
정말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 방만한 재정투자가 우려된다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빨리 그 지방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떠날 형편이 못되면 방만한 지자체가 정신차릴 수 있게 세금의 원래 주인인 지역주민들이 나서야 한다. 내 돈은 내가 지켜야 한다.
납세자로서 2002 지방선거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밑빠진 독에 해당하는 후보를 안 뽑는 것, 이것이 내 돈을 지키는 길이다. 2002년 지방선거 "밑빠진 독의 선택", 이런 후보는 찍지 맙시다!
1. 즉흥적인 사업 결정은 예산낭비를 부른다.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사업은 예산이 통해 이루어진다. 즉 예산이 밑받침 되지 않는 사업은 실현될 수 없다. 이번 지방자치단체의 후보들이 제시하는 많은 공약들도 예산으로 수립되지 않으면 공약(空約)이 된다. 또한 치밀한 사업 구상과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공약을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면 이는 예산낭비가 된다.
밑빠진 독상의 사업들을 보면 단체장의 고집과 신중하지 못한 사업구상, 즉흥적인 사업발상, 그리고 용감하게 밀고 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사업의 특성이 나타난다. 시민들이 사업적자 분에 대한 부적정한 정부보조금 156억원 환수소송까지 제기한 하남환경국제환경박람회를 보면, 40여일의 행사를 위해 총사업비 235억원중 186억원의 세금이 투자되었는데 이는 하남시 예산의 10%를 넘는 큰 사업이었다. 대회기간 이전부터 중앙정부에서 이미 사업의 부정적인 타당성을 이유로 만류했고 민자유치도 성공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사업이 강행되었다.
익산시 보석박물관 사업은 좀더 심하다. 특정 개인이 소장하는 보석 600억원 상당을 기증하겠다는 각서 한 장만으로 230억원을 들여 박물관 건립을 시작하였다. 익산시장은 보석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었으며 전문기관에 의뢰하거나 자문도 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익산시가 보석의 도시인데 박물관 정도는 하나 있어야 되지 않는가"라는 식의 감성적 의사결정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청원군은, 공개입찰도 없이 사업능력이 의심되는 업체와 "초정약수 스파텔"이라는 민자사업을 벌여 40여억원을 지출하였는데 건설비, 회원금 등 총 수백억원의 혈세가 낭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청원군수는 이 사업과 관련하여 뇌물수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에도 별다른 사과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관광개발은 지방공기업법에 근거한 민관공동출자기업이다. 테즈락호는 부산의 수미르 공원에서 태종대, 오륙도 등을 돌아오는 유람선이다. 1997년 10월 부산 국제영화제에 맞추어 취항하기 위해 중고 유람선 테즈락호를 40여억원에 구입하여 3년동안 24억의 적자를 내고 14억원에 매각하였다. 이에 따라 경영이 악화되어 초기 50억원의 출자금을 모두 소진하였다. 그런데 99년 행정자치부의 자본금증자 불허방침과 감사원의 민영화 권고도 무시하고 부산시에서는 추가적으로 출자를 확대하였다. 테즈락호 사업은 사실상 최대 주주인 시장의 지시라는 이유로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타당성 검토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였다.
2. 절차를 무시하면 예산이 낭비된다.
지방예산의 낭비를 막고 효율적인 운영을 유도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관리 통제 장치들이 제도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밑빠진 독상을 받는 사업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장치들을 무효화시키고 있다. 규모가 큰 사업은 당해 연도의 예산을 배정하기 전에 반드시 지방투자심사제도를 거쳐 사업타당성을 확인하도록 하는 지방투자심사제도가 있다. 100억원이 넘는 사업들은 광역지자체를 거쳐 행자부에서 심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방채 발행은 행자부에서 적격 여부를 심사한다. 매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지방의회에서도 강도 높게(?) 시민 혈세부담의 적정성을 심사한다. 지방공사의 사업은 지분을 가진 해당 지자체에서 이사회에 참석하여 주주로서 심사한다. 이 모든 장치가 밑빠진 독상 사업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익산보석박물관의 경우 사업을 계획할 1996년에는 사업비가 173억원(국비 87억원 도비 53억원 시비 43억원)이었는데 다음 해에는 230억원으로 늘었으며, 국비는 실제 26억원 보조에 그쳐 204억원이 자체 예산으로 충당하게 되었다. 이런 주먹구구식 예산계획이 어떻게 투자사업 심의를 통과하였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익산시에서는 1997년 상반기 재정 투융자심사 지시사항을 지키지 않았으며 확정되지도 않았던 도비 57억여원을 확보 가능하다고 보고하면서 의회 승인을 받았다.
민관공동출자기업인 ㈜부산관광개발은 설립 초기에 자본규모에 비해 과도한 재원이 소요되는 유람선(테즈락호)사업, 태종대전망대 건설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타당성 검토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유람선사업은 적자만 보고 그만 두었고 태종대 전망대사업은 임대 분양 부진으로 공사대금 40여억원중 절반 이상을 상환하지 못하는 등 부실한 경영으로 재정위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1천여억원 규모의 아시안게임 골프경기장 건설 사업 역시 건설 초기단계부터 설계비 과다책정과 시공사 선정 및 고가 수의계약을 둘러싸고 시민들로부터 특혜 의혹을 받는 등 경영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1998년 당시 내무부의 투자승인조건과 공사가 다르게 운영되고 운영이 부실하다고 판단하여 공사에 대한 출자금 회수나 지분매각을 통한 민영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적하였으나 부산시는 오히려 공사에 대한 증자 및 출자를 결정하고 강행하였다.
속초시 청초호유원지사업의 경우, 부실한 사업계획수립과 진행으로 공사중지 명령을 받는 등 사업진행과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청초호유원지 환경영향평가 용역업체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작성한 3차 환경영향평가가 허위임이 밝혀진 이후에도 동 공사가 계속 용역업체로 과업을 계속 수행하였다.
환경영향평가의 허위작성으로 공사가 지연되고, 이것이 청초호유원지 사업의 재정부실을 가져온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청초호유원지사업은 관광자원조성이라는 애초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환경 가치가 높은 석호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산집행에 대한 합리적 판단이나 절차와 무관한 지방자치단체의 용감한 소신의 결과이다. 중앙정부의 감사는 지방자치를 위협하는 것이고 지방의원들의 비판은 현행 단체장에 대한 흠집내기 이고, 지역시민단체들의 비판은 뭘 모르는 아마추어들의 흥분에 불과하다고 무시한다. 그리고는 세월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 하다.
결국 답답해하는 사람이 나설 수밖에 없고 그 저변이 확대되어야 한다. 돈 없다고 푸념하지 말고 있는 돈부터 잘 운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규모 사업에 대해서는 시민들에게 공개하여 타당성 여부에 대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예산사업에 대해서는 수익성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3. 재정책임의 상실이 밑빠진 독을 만든다.
밑빠진 독상을 받은 사업들은 정말 일부 대표적인 사업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주요 사업에 대해 전략적으로 투자심사를 실시하여 재정부담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예는 많지 않다. 어쩌면 모두가 재정책임을 상실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 하다. 빚은 곤란하다며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수혜를 줄 수 있는 생활복지비 지출마저 아껴 모아 둔 돈을 무모한 사업 의욕으로 한번에 날릴 수 있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 이외에 어떠한 실질 제재는 없다. 지역감정과 낙후지역 균형개발이라는 저급한 수준의 정치논리이면 모든 것이 다 통하는 듯 하다.
그 속에서 알뜰히 살아온 지역주민만 멍든다. 정말 더 큰 문제는 철저한 자기 반성없이 그냥 덮어두려고 하거나 정치적 음해로 논쟁의 주제를 돌리려는 책임회피식의 병리적인 자세이다. 이제 납세자인 유권자가 이러한 예산낭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납세자권리는 첫째, 납세자가 낸 돈이 누구를 위해 얼마만큼 쓰이는지 알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 납세지가 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참여할 권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납세자가 낸 돈이 잘못 쓰였을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이다.
납세자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것만이 밑빠진 독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납세자는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납세자의 혈세를 집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누구를 위해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을 쓰는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안을 국회나 지방의회에 제출할 때까지 일체의 정보를 시민단체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
납세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재정정보 공개를 통한 투명 예산, 예산편성의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참여 예산, 잘 못 쓰여진 예산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책임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정보 공개에 대한 법(조례)은 청구가 있을 때 공개하는 '소극적 공개'에서 적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적극적 공개'로 바꿔야 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위법하게 사용된 경우에 이를 환수할 수 있는 소송제기권을 납세자에게 부여하는 '납세자 소송법'이 하루 속히 제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민 통제 장치가 작동 되야 '밑빠진 독'을 막을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