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action.or.kr/blog/plan/index.php?pl=53시민행동 대화모임 이음 세 번째 이야기 <평택 대추리에 말걸기>가 지난 8일(금) 성대 앞 영상까페 지오에서 열렸습니다. 담당자의 준비 부족으로 많은 분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고등학생들부터 사회인들, 활동가들까지 여러 분들이 참석해서 좋은 얘기를 나누어주셨답니다. 특히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관한 사회조사 프로젝트 과제를 준비하고 있는 이우 고등학교 학생들 덕분에 적은 인원에도 생기있는 모임이 되었지요. (사실 그 용감한 일당들이 아니었다면 이날 대화모임, 상당히 우울할 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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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일당들..^^ |
예정 시간을 살짝 넘긴 7시 20분. <대추리 전쟁>의 상영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간 평택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어떤 논란들이 있었는지를 사전에 알지 못하면 조금 어려운 영화일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만. 다들 집중해서 영화를 보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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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집중하고 있죠..^^ |
그리고,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오늘의 이야기꾼 이경주 교수님이 먼저 말문을 트셨습니다.
이경주 : 3~4일전 한겨레신문에서 택지개발에 대한 기사를 봤습니다. 한겨레신문조차도 판교지구, 무슨 지구 이런 곳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지구 중에 제 고향부근도 있었습니다. 고향 친구에게 전화해서 돈 엄청 벌었겠다고 했더니 그 친구 말하기를 “처음에 만 평 있었는데 이래저래 다 뺐기고 남은 건 45평, 몇천만원 겨우 남았다. 게다가 아버지가 그 과정에서 돌아가셨다. 평생 농사만 지으시며 살아오셨는데, 택지개발되면서 농사 못짓게 되고, 또 위암 수술까지 겹치면서 우울해하시다 돌아가셨다”고 해요. 오늘 본 다큐 중에도 한 할머니가 “우리 영감이 심은 나무인데…”하고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그 친구도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감나무를 빼앗기고 안타까워했어요. 토지수용을 당하면 돈으로 보상이 이루어지지만, 돈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평화롭게 농사지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죠.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인권이라 하면 내가 자유롭게 사는 것을 국가가 방해할 때 간섭받지 않을 권리지요. 평화적 생존권 역시 내가 평화롭게 살기 위해 국가의 간섭을 어떻게 배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현재 상태 유지에 그치지 말고, 즉 보상 몇 푼 더 받냐 덜 받냐에 만족하지 않고,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을 없애달라고 요청하는 적극적 권리입니다. 두발 자유가 인권 문제냐 아니냐 논란이 되고 하듯이, 평화적 생존권 역시 새롭게 등장하는 인권입니다. 흔히들 인권도 세대가 있다고 하는데요. 1세대 인권은 신체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처럼 국가가 간섭하지 않으면 충족되는 권리들이고요. 2세대 인권은 노동3권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장해줘야 하는 권리들입니다. 3세대 인권은 그 두 가지 특성이 모두 있다고 하는데요. 평화적 생존권 또한 3세대 인권에 속합니다.
우리 헌법에는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말이 있을까요? 그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기 위한 권리라면, 헌법에 열거되어 있지 않더라도 경시되어서는 안된다, 주목해야 한다고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헌법에서는 헌법 전문에 평화적 생존권이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훗카이도에 나이키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었는데, 그 지역에 젖소를 키우는 형제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기지가 들어오면서 젖소들이 생산하는 우유의 양이 격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형제가 기지 부지에 침입해서 시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이 시위에 대해 평화적 생존권에 입각한 정당한 요구라며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참고로 이 부분을 이경주 선생님이 나눠주신 자료를 통해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아무튼 후쿠시마 판사는 1973년 9월7일, ‘일본 헌법에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그 규모로 보나 장비로 보나 군대에 해당하는 자위대를 두는 것은 헌법 원리에 반하며, 따라서 자위대의 일부인 항공자위대의 미사일기지 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해제는 공익과 무관하다’고 판결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정부의 보안림해제처분이 일본국 헌법 전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곧 나이키미사일 발사기지가 설치되면 유사시 상대국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되는 바, 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의 권리를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청년법률가협회와 같은 많은 법률가단체, 노동조합, 지역주민, 각종 정당과 사회단체의 지지 속에 14년이나 계속된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 제13호)
다큐 처음과 끝에 조선례 할머니라는 분이 나오십니다. 이 분이 1915년생이니까 일제시대부터 6·25, 이승만 정부 다 거치신 분입니다. 이 분이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하고 자문하셨습니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아니면 처음에 나온 할아버지처럼 “어차피 질건데 악쓰고 해봐야 소용없”을까요?
동경 서쪽 다치가와라는 곳에 가면 50만평이나 되는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거기가 원래 미군기지를 확장하려 했덧 곳입니다. 여기서도 주민들이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서 시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1심에서 평화적 생존권에 따른 주장이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물론 2·3심에서는 패소해서 1인당 우리 돈으로 5천원 정도 되는 벌금을 물었습니다만. 결국 일본 정부는 기지 반대 운동이 시작된 지 10년만인 1967년에 기지 확장 계획을 포기했고, 또 10년이 지나서 공원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평택은 이제 2~3년이 지났는데요. 우리가 얼마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가, 90년대에는 인권이 시대정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2000년대는 평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평화적 생존권은 평화와 인권이 결합하는 중요한 권리 개념입니다.
이경주 선생님이 영화 감상과 선생님의 화두인 평화적 생존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신 후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상당히 무거운 주제라서 먼저 말문을 트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선생님께서 참가한 분들에게 질문을 하나씩 던지면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이후 고등학교 학생 중 한 분이 참가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여학생 1 : 학교에서 사회참여 프로젝트라는 게 있거든요. 우리가 발로 뛰고 연구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 건데요. 이번에 대추리 문제를 주제로 선택해서 지금 조사 계획을 세우고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다큐를 보면서, 물론 직접 가봐야 더 잘 알겠지만, 주민들의 아픔이 제게도 전달되어왔고요. 처음에 비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줄었지만, 우리가 열심히 조사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후 고등학교 학생들 외에 낯선 얼굴이 두 분 있었습니다. 시민행동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행사 안내를 보고 찾아오셨다는 두 분.
시민 1 : 영상이 7월 22일까지의 이야기를 전해줬는데요. 저희들은 7월 22일 이후에 몇 차례 방문을 했었거든요. 오늘은 저희들이 못 본 7월 22일 이전 모습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남학생 중 한 분은 영상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을 하나 지적했습니다.
남학생 1 : 결국 누구의 이익인지도 불분명한 일을 하면서 국민들을 양으로 보는 태도가 실망스럽습니다. 또 영상을 보면서 전경들도 짱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같은 나라 사람들인데요.
이경주 : 맞습니다. 최근에 제가 가르쳤던 대학생 중 한 친구가 군대에서 돌아왔습니다. 어디 있었냐고 하니까, 저기 남쪽 어느 지역에서 전경을 했답니다. 전경 생활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역시 시위대에 곤봉으로 맞고 그랬다더군요. 그래서 시위대가 밉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시민들도 미웠지만, 그 사람들 쪽으로 나를 떠미는 사람들이 더 미웠다”고 하더라고요.
농사를 지어본 학생들은 대추리 주민들의 일을 남일처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학생 2 : 저는 대추리 문제를 언론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요. 막연히 미국을 욕하기만 하다가,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욕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교과 중에 농사짓는 게 있는데요. 땅 한두 평만 고르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요. 그렇게 애써 지은 논밭이 짓밟히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이경주 선생님께 곤란한 질문을 던진 학생도 있었습니다.
남학생 3 : 선생님이 대추리 마을 분이라면, 땅을 지키는 길을 택하시겠어요? 아니면 보상받고 나가는 길을 택하시겠어요?
이경주 : 정말 어려운 질문이고, 제가 그 마을에 살면 고민 많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은 끝까지 버티는 쪽을 택할 것 같습니다. 동경 주변에 나리타 공항라고 있습니다. 그 공항에 처음에 활주로를 3개 만들도록 계획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2개밖에 없습니다. 활주로 부지 한 가운데에서 한 집이 30년 동안 끝까지 토지 수용을 거부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결국 오사카에 새로 땅을 마련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정부가 자기 맘대로 지도에 줄 그어서 하는 일이 줄어들었고요. 심지어 토지 수용이 어려우니까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어서 공항을 만들게 되는 식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개인이 30년이나 버티는 게 무척 힘든 일이긴 하지만, 저도 그런 길을 택할 것 같습니다.
시민행동의 상근자들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는데요.
주미진 :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잘 아는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고, 지난 5월 철거 때는 약한 사람들이 짓밟히는 게 마음 아파서 사진이나 보도를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오늘 다큐 보면서 주민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전경들의 시선도 담아주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쉬웠고요. 참 어려운 건, 심정적으로는 공감하면서도, 국민들과의 접점이 없이 고립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고 서로 맘 상하는 일 줄일 수 있을까 싶어서 걱정입니다.
장상미 : 영국에서 열혈 아줌마들이 핵기지에 망치들고 침입해서 기물 파손하고 그랬는데도 무죄로 풀려났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쟁을 하는 국가에 대해 반대할 권리를 국가가 인정해준 건데요. 우리에게도 이런 행동주의가 허용이 될까요?
이경주 : 오늘 소개해드렸듯이 일본의 반기지 운동 사례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가 두 번이나 있습니다. 물론 일본과 우리는 헌법에서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 헌법은 군대를 두지 않는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가 있죠. 위헌 상태인 자위대를 불법 점거했다고 처벌하기에는 정부로서도 난감한 게 있는 거지요. 그래서 상징적인 수준의 벌금만 부과하고 말곤 하는데요.
그에 비해 우리는 좀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서도 무죄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헌법을 구성하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국민주권의 원리나 법치국가의 원리 같은 건 들어보신 적이 있을 텐데요. 마찬가지로 우리헌법에는 평화주의 원리가 있습니다. 이 원리가 있기 때문에, 군대가 있지만 오직 방위를 위해서만, 평화를 위해서만 쓰이도록 되어 있고요. 주한미군이 주둔하더라도 자주적이어야 합니다. 판사가 이 원리에 충실하면 영국이나 일본처럼 획기적인 판결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인권은 법을 만들고 재판을 하기 위한 규범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규범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사회적 압력을 통해 모든 국민들의 마음에 담겨야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변호사나 이런 사람들만 인권을 얘기했지만, 여기 계신 활동가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법조인입니다.
영상은 7월 22일까지의 상황만 다루었는데요. 그 이후 대추리는 어떤 상황일까요? 다녀오신 분들이 소개해주셨습니다.
시민 1 : 아는 언니가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한 번 가면 두 번 가고 싶고. 지금은 검문이 많이 늘었고요. 오는 10일 이후에 철거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방문을 하려면 대책위 사무실에 미리 연락하고 찾아가면 되는데, 문제는 다음 주에 철거를 하게 되면…. 최근 대추리 역사관이 만들어졌는데요. 거기서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전시해두고 있습니다.
이경주 : 앞으로 1주일 사이에 빈집들이 다 철거될 것 같은데요. 우리 나라 행정대집행 방식이 특이한 것은 민간인들을 고용해서 한다는 거죠. 지난 5월 3일에도 민간인들을 용역으로 동원해서 민간인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매우 비정상적인 방식이죠.
함께 오신 분은 날카로운 질문도 주셨습니다.
시민 2: 일본은 10년의 싸움 끝에 기지 확장이 중단되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게 된 데에는 주민들의 싸움도 있었지만, 일본 국가의 태도가 좀 달랐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국가가 나서서 확장을 옹호하고 있는데요.
이경주 : 우선 일본이 10년 걸렸는데, 우리도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일본은 워낙 재판이 오래 걸리는 나라입니다. 교과서 검정 문제로 소송이 있었는데요. 그 때는 30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재판도 빠르고 사회적 응집력도 큰 편이므로, 분위기가 잘 조성되면 좀 더 단시간 내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고등학생, 대학생들,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많은 역할을 했고요. 거기서도 평화유랑단같은 활동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지자체장들의 역할이 달랐습니다. 우리로 치면 평택시장 같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을 지원했습니다. 가스나와 시장 같은 경우 철거를 거부해서 법정에 피고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이와쿠니랑 오키나와 지역에서 기지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데요. 확장 반대를 공약한 사람들이 시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시장들이 부담을 느끼게 되면 달라질 수도 있는 거지요. 정말 관심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는, “여기 활동하는 분들도 있고 공부하는 분들도 있는데 결국 우리가 배우는 건 시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기도 합니다. 이후 학교는 듣던 대로 부러운 학교입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야기를 마쳤답니다.
담당자가 여러모로 준비가 부족했지만, 그 중에도 가장 큰 실수는 오신 분들의 이름도 연락처도 받아두지 않았단 겁니다. 그 날 오신 분들 어떤 느낌들을 갖고 돌아가셨는지, 이후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추리에 찾아가서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지, 학교에서도 영상제를 개최하겠다더니 준비 잘 되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말았는데 지금 어떤 심정들일지.. 궁금한 게 많아도 얘기나눌 방도가 없네요.
학생들이 방문하고 조사할 여유만이라도 충분히 남겨주었다면, 당장은 국가 정책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고 서로 상처만 남더라도, 먼 훗날 그 학생들이 자라났을 때는 좀 다른 방식도 가능할 수 있을 텐데.. 싶어서, 늦은 후기를 쓰면서 그 점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꺄악, 꺅쟁이 같으니.
그나저나 이렇게 올라오니까,
왠지 기분이 묘하군요.
낄낄.
.......그리고 이런 걸 숙제라고 내주는 학교도 참.
사회 참여 프로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