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금)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된 "인권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 공개토론회를 끝으로 연속기획 <헌법 다시보기>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찬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소송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토론에서는 비단 기본권 조항 뿐 아니라, 영토 조항, 경제 조항 등 헌법 조항 전반을, 나아가 헌법 그 자체를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점검하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하고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후원한 <헌법 다시보기> 연속 기획은 지구화·정보화 등의 거대한 변화와 성·생태·평화·문화 등 시민사회의 새로운 가치들이 부상하는 가운데, '헌법'을 매개로 하여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진행되었으며, 총 8차례에 걸쳐 평화, 여성, 환경, 문화, 자치, 경제민주화, 토의민주주의 등 다양한 관점을 통해 헌법을 다시 살펴보았다.


기본권, 국민을 넘어, 국가를 벗어나, 의무와의 결합을 끊어내고...

이 날 박주원 이화여대 연구교수(정치학)는 <인권의 '정치적' 재구성 - 자유권, 사회권을 넘어 정치적 권리로, 국민주권을 넘어 새로운 정치적 주권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헌법과 인권을 논의하는 지반 자체를 재검토하려고 시도했다. 박 교수는 2차 대전 이후 보편적 인권 개념이 등장하는 것을 크게 세 가지 이유로 분석했다. 첫째, 근대 합리주의의 비합리적 산물인 양 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다시 인간 그 자체에 주목하는 시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 및 인민주권 개념이 붕괴하고 이를 대체할 구체적인 정치적 주권을 확립하지 못한 과도기에 잠정적으로 제기된 개념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시대인 20세기의 인권 개념이 필연적으로 '국민주권' 개념일 수밖에 없었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 중 하나로 세계시민권과 연결되는 보편적 인권 개념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데, 우선 '인도적 개입'의 정당성 문제이다. 즉, 인도적 개입을 위해 전쟁과 같은 비인도적 수단을 택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와 인도적 개입이 실제로는 문화 제국주의는 아닌가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보편적 인권은 '광범위한 토론 과정'에 그 정당성을 두고 있는데, 실제로는 세계 시민들의 광범위한 토론이 가능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현존 국가주권에 입각한 절차에 의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권의 확대와 사회권의 확대는 각각 '사회국가'와 '국가사회'의 근거가 될 뿐,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 교수는 대의제적 정치원리에 입각한 근대국가 자체를 극복하고 자신이 직접 정치행위에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인권의 확대에 있어 결정적인 지점이라고 파악한다. 이 지점에서 박 교수는 (소지역에 기초한 정치결사체인) 아렌트의 '마을 평의회'와 (직장에 기초한 정치결사체인) 마르크스의 '생산자 연대' 논의에 주목한다.


한편 정태호 경희대 법대 교수는 <권리장전의 개정 방향>이라는 발표를 통해 현행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선 기본권 장의 제목부터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기본권과 기본의무'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자를 '국민'으로 명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또 각 조항에서도 모든 인간의 권리와 구체적 국적자의 권리를 분명히 구분해 규율함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등의 국가배상청구권을 박탈하고 있는 제28조 2항, 그리고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언론·출판의 자유의 한계로 명시하고 있는 제21조 4항 1문과 통신·방송·신문의 설립 요건을 법률로 정하게 하고 있는 제21조 3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고비처의 설립이나 경찰 수사관의 수사권 보장, 참·배심제 등 사법개혁 논의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검사만이 영장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영장제도(제12조 3항, 제16조)과 법관에 의한 재판을 명시한 제21조 제1항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그 외에 생명권 및 신체의 권리, 사형제 폐지,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정보의 자유 등을 헌법 상에 신설할 필요성을 제시했고, 여성할당제 등의 헌법적 근거를 위해 사실상의 양성평등 조항을 국가목표조항으로 포함시키자는 제안과 제11조의 차별 금지 사유에 출신지역을 포함하자는 제안,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제안을 했다. 아울러 정치적 망명권과 대체복무제를 헌법에 명시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토론에 나선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박 교수의 문제의식은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인권의 적들을 어떻게 할 지가 함께 얘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사유재산권을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적(시장중심적) 경제권력과 그들의 인권 담론을 들었다. 오히려 그는 현행 헌법 제23조의 재산권 조항이 생활의 물적 토대로서의 재산권만을 의미하는 것이며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의미하지 않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대화와 토론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해 한 교수는 헌법 제9조 문화국가 조항에 문화적 다양성의 보장을 명시하자는 제안을 했다.

또 사회적 기본권을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예산 책정이 중요하다며, 예산 법률주의를 채택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이 외에 평화롭게 살고 노동하고 배울 수 있는 포괄적 평화권 개념이 헌법에 담겼으면 한다는 바램도 표현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사회학)는 "헌법 전문에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한다는 표현을 통해 인권과 의무를 상호결합시켰는데, '타인의 인권을 존중할 의무'를 제외하면 인권이 의무와 결합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권의 본질은 보편적인데 인권 보장의 책임은 개별 국가에 있다는 근본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헌법이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인권 보장을 위해 국제사회가 국제질서와 국제법을 최대한 준수하고 협력하는' 국제사회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영토 조항으로 인해 북한 인권 문제가 계속 제기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아일랜드의 헌법 개정 사례를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대법원과 헌재의 '전투적 민주주의' 판례로 이어지고 있다며 제3조 영토조항과 함께 재규정이 필요한 조항으로 꼽았다. 또 제23조(재산권), 제34조(사회보장), 제119조(경제질서) 등을 사회권적 입장에서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하자고 제안했으며, 제19조의 양심의 자유 역시 사상·양심의 자유라고 분명히 하자고 제안했다. 또 제11조(평등권)의 차별 금지 사유 중 '성별'을 '성적 지향'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치적 권리를 참정권과 공무담임권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국민소환권과 국민발안권, 사법에의 국민참여, 검찰의 기소독점권에 대항한 시민기소권, 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기구화 등 여러 가지 방향을 제안했다. 또한 용어의 대중화, 한글화를 통해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날 공개토론회의 자료집은 첨부파일을 내려받으면 볼 수 있다. 시민행동은 지금까지의 연속기획의 성과를 정리하여 도서 출판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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