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하고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후원하는 연속기획 <헌법 다시보기>, 그 일곱 번째 공개토론회인 "시민의 눈으로 권력구조 다시보기"가 10월 25일 오후 2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진행되었다.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토론은 대통령 임기나 내각제 같은 정치권의 논의와는 달리, 제대로 된 토론과 시민의 직접 참여를 헌법에 명시하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이 이루어졌다.

<헌법 다시보기> 연속 기획은 지구화·정보화 등의 거대한 변화와 성·생태·평화·문화 등 시민사회의 새로운 가치들이 부상하는 가운데, '헌법'을 매개로 하여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숙의(혹은 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민의회' 창설 검토해야

이 날 토론에서는 김상준 경희대 NGO대학원 교수(사회학)가 <현행 헌정체제의 보완방안 - 제2입법부 '(가칭) 시민의회'의 도입>을, 오현철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교수(정치학)가 <정치적 대표체계의 민주적 재구성 방안 모색 - 토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를 발표했다. 두 발표자 모두 한 목소리로, 국회, 행정부, 법원이 국민을 대신해서 결정하는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제대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시민의회를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두 교수가 말하는 시민의회는 전국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빚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성별, 지역, 연령, 계급 등의 대표성을 고려한 가운데 무작위로 임의추출된 시민들로 구성되는 회의체이며, 각종 쟁점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한 후 일반 시민들의 상식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는 기구이다. 그러나 두 교수가 주목하는 문제의식에 일정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시민의회의 각론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김 교수가 주목하는 문제는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발생한 여러 가지 근본적 사회 갈등들(의약분업, 새만금, 위도 핵폐기장 등)을 국회나 행정부 같은 기존의 대의제 국가기구들이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행정부는 각종 영향평가, 자문기구, 공청회 등의 의견 수렴 절차들을 확대하고 있으나 사실상 요식 행위에 그칠 뿐이며 국회는 립서비스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문제들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의존하게 되지만 (선출과 토론 과정이 없는) 헌재의 결정에는 누구도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게 된다고 진단한다. 반면, 오 교수가 주목하는 문제는 민주적 대표성이 낮은 사법부가 민주적 대표성이 높은 국회나 행정부의 결정을 뒤집는 최근의 양상이다. 오 교수는 수도이전 위헌판결을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크게 보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로 포괄되는 문제일 수 있으나, 김 교수는 탈근대적이고 다원화된 균열구조를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에, 오 교수는 헌법 기관 사이의 충돌과 제왕적 사법부 현상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 결론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동일하게 대의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시민의회를 제안하고 있지만, 김 교수는 기존의 국회를 시민의회가 보완/견제하는 일종의 양원제적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오 교수는 헌재를 대체하여 국가기구 간의 갈등 문제, 기본권 및 헌법 해석, 군사행위 관련 결정, 대통령, 의원 등 주요 대리인들의 임면 관련 권한을 갖는 (일종의 상설 모의 국민투표 기관으로서의) 시민의회를 제안하고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기현 부천YMCA 사무총장은 "각론은 다듬을 필요가 있겠지만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발표"라며 공감을 표한 후, 기존 사회운동에서 제안되었던 유사한 아이디어들을 소개했다. 김 총장에 따르면, 동학혁명 당시에 설치되었던 집강소를 되살려서 '시민의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김지하 선생이 했다고 하며, 이신행 교수 또한 민회 운동을 제안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토론자들과 청중석에서는 발표자들의 구상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먼저 김도균 서울대 법대 교수는 참여와 심의의 제도화에는 찬성하지만 헌법상 기본권과 통치구조 차원으로 제도화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시민심의권이 헌법상 기본권이 될 경우, 수많은 정책결정에 대해 반대자들이 '충분히 논의할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에 들어갈 것이 짐작되며, 그렇게 될 경우 헌법재판소의 영향력만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금까지의 시민사회의 영향력과 정당성은 법적 권한보다는 도덕적 측면에 기반한 것인데, 시민의회가 헌법적 차원에서 결정권을 갖게 되면 결정의 내용 자체보다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 자체로 힘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도덕적 정당성과 합법성 사이의 긴장을 통해 합리성을 유지하던 시민사회의 활력이 오히려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정치학)는 아직까지 대의제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려우며 보완하는 수준에서 시민의회나 배심제 같은 심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제한 후, 몇 가지 다른 보완 방안을 제안했다. 우선 지금 상황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열 뿐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의 균열의 강도가 매우 크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의 도입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제왕적 사법부 현상이 나타난 것은 헌법재판소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특수한 현상으로 봐야 한다며, 헌법재판소를 섣불리 폐지하기보다는 헌재로 가기 이전에 민주적 정치/행정 절차를 충실히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생태, 여성 등 다양한 가치가 등장하고 사회적 균열이 복잡해지면서 내각제처럼 여러 정치세력들이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는 협의제 시스템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민주항쟁을 통해 획득한 대통령제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진단하면서, 이 간극을 신중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중석에서는 선거로 뽑은 사람들조차도 잘못된 결정을 거듭하는데, 제비뽑기로 뽑힌 사람들의 결정을 시민들이 승복하겠냐는 본질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토론을 지켜보던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어떤 식으로든 헌법에 토론 시스템을 장착시킬 필요성은 분명하다"며 "심의(혹은 토의) 민주주의와 대의(혹은 정당) 민주주의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절충에 나서기도 했다. 또, 시민의회를 설치하되 기존 대의기구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결정권은 주지 말자는 한 청중의 제안도 있었다.

이 날 사회를 맡은 강경선 교수는 "두 분 발표를 들으면 '좋은 마음'들이 생겨난다"는 소감으로 토론을 정리했다. 강 교수는 "최근 국가주권을 실현하는 기구가 아니라 오히려 제한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기구들이 제안되는 포스트모던적 경향이 나타난다"며 "국가인권위나 시민의회 같이 '착한 생각'들이 생겨나는 기구들을 헌법에 반영하려고 시도해보자"는 제안으로 토론을 마무리지었다.

이 날 공개토론회의 자료집은 첨부파일을 내려받으면 볼 수 있다. 한편, 11월 4일(금)에는 마지막 순서인 <인권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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