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하고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후원하는 연속기획 <헌법 다시보기> 세 번째 순서인 "여성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가 26일(금) 오후 2시 연세대학교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열렸다. 여성운동에 오래동안 종사해온 여러 활동가들과 이론가들이 청중으로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 토론회에서는 비단 헌법만이 아니라, 여성과 법, 여성운동과 입법운동의 관계에 대한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헌법 다시보기> 연속 기획은 지구화·정보화 등의 거대한 변화와 성·생태·평화·문화 등 시민사회의 새로운 가치들이 부상하는 가운데, '헌법'을 매개로 하여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성에 맹목적인 헌법 비판에서부터 여성입법운동의 한계 검토까지 폭넓은 논의 이어져

정희진 강사(서강대, 여성학)는 <헌법의 탈식민화와 '현실화'를 위하여 - 한국헌법의 남성성과 국가주의의 문제>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우리 헌법의 "비현실성"을 강조했다. 제도화된 정당정치 중심의 소위 '현실정치'가 가장 협소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라고 지적하는 그에게, 현실은 자녀 없이 부부만 살거나 혼자 사는 가구가 전체의 40%에 달하는 상황, 결혼하는 사람 100명 중 8명이 국제 결혼인 상황, 여성 1인당 출산률이 한국 역사상, 그리고 동시대 전세계 국가 중 최저인 상황, UN의 이민국가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100만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구화된 현실이다.

그는 헌법 역시 이같은 현실을 담지 못한 채, 혈연적 국민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리고 남성 국민의 관심사인 정치권력 구조만을 과도하게 언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평등권에 관한 조항은 매우 추상적으로만 언급되어 있는데, 그는 이 부분을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그리고 지역, 장애, 성적 지향, 학력, 외모, 학벌, 직업, 국적, 인종 등 사회적 신분별로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양성만을 혼인의 기준으로 제시한 36조 1항, 모성과 여성노동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36조 2항과 32조,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 장애인 등을 국민에서 제외해버린 39조 병역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외에도 그는 14조 거주·이전의 자유나 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21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여성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젠더중립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비판했다.

이어서 부산대 법대의 오정진 교수는 <삶을 이해하는 헌법 잣기 - 한 페미니스트가 바라는 헌법 이야기>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페미니즘의 입장에서의 헌법 재구성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는 각종 입법례와 판례를 통해 우리 헌법이 여성을, 그리고 (남녀의 사회적 관계인) 젠더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꼼꼼히 드러냈다.

그는 남녀의 이분법에 기초한 헌법, 가족, 그것도 이성애를 전제로 하는 가족을 재생산의 기준으로 삼는 헌법, 프라이버시를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적극적 옹호로서보다는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는 고립적 개인상으로 이해하는 헌법의 편협한 인간관을 보여주었다. 또한 여성의 저대표성이나 거주이전·직업선택의 자유 등이 유명무실한 상황 등에서 헌법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했다. 나아가 남녀간 정년 차등을 합리적이라고 보는 판례나 성희롱·강간 판단 기준의 남성편향성 등 이른바 법의 '합리성' 자체도 문제삼았다.

그는 현재의 헌법을 대신하는 헌법의 모습으로 ▲ 삶의 총체성을 알고 ▲ 저마다의 자율적인 삶을 가능케 하며 ▲ 부당함에 단호히 맞서고 ▲ 재미있으며 ▲ 삶을 진보하게 하고 ▲ 늘 변화하며 ▲ 삶의 구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헌법을 들었다. 또 이를 위해 기존의 헌법과 각종 개념들을 늘 비판할 것을 제시했다. 나아가 헌법의 수범자일뿐 아니라 입법자로서, 기존의 헌법이 던지고 있는 문제틀 자체를 다시 결정하고 구성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토론자로 참가한 한국여성개발원 박선영 연구위원은 현재의 헌법이 이분법을 구축하고 강화하는 헌법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을 양성만으로 구분하고 그에 도전하는 목소리들을 배제하며, 또 공사 영역의 분리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법이 개입해서는 안되는 사적 영역이란 없다고 강조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는 위계화된 정체성의 맨 끝자리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로 헌법에 문제제기했다.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보면 "모든 국민은…"으로 시작되는 헌법적 기본권 질서는 배제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집회의 자유는 명동성당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국한되며, 그들의 가족은 국경을 넘지 못하고, 직업선택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노동3권은 실질적 내용에서 상실되었고,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언어와 매체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헌법이 필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사무총장은 여성입법운동의 경험을 성찰하면서 이후 종합토론의 풍부한 토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한국의 여성입법운동이 "헌법상 여성의 내재적 부재를 보완하는 단계로 이어지지 못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법의 제정과 개정에도 불구하고 성차별과 여성폭력 여성배제에 관한 규범적 가치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때문에 법 제정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헌법 차원의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영숙 사무총장의 토론은 그대로 종합토론의 주제가 되었는데, 특히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의 폐지 및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 과정을 중심으로 여성입법운동의 현실에 대한 다양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특히 최근 여성, 여성운동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타나면서 기존의 '단일 대오'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으며, 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전개되었다.


이 날 공개토론회의 자료집은 첨부파일을 내려받으면 볼 수 있다. 한편, 오는 9월 14일(수)에는 제4회 <생명·환경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 그리고 27일(화)에는 제5회 <자치·분권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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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 열띤 토론 이어져.. 성명/논평/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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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눈으로 헌법 다시보기> 열려 성명/논평/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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