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조세 성격의 부담금과 정부 출연금 등으로 총 2백98조원(올해 기준)의 기금이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제대로 된 성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기금목적과 다른 곳에 ‘퍼주기식’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전기요금에 붙는 부담금(전기요금의 4.591%)으로 조성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올해 사업비로 9천5백억원을 책정했다. 이 가운데 4분의 1가량인 2천7백여억원은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으로 쓰인다. 지역 주민들에게 주는 ‘위로비’인 셈이다.

영광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전남 영광군을 찾아 사업 실태를 분석해보기로 했다. 이 지역에는 매년 30억원대의 지원금이 책정돼 각종 시설이 세워지고 있다.

먼저 영광군 홍농읍 계마항 포구의 회센터. 3년전 기금에서 3억원을 지원받아 횟집 10곳이 문을 열었지만 현재 영업중인 곳은 4곳뿐이다. 횟집 주인 강원만씨(51)는 “회센터를 연지 3개월만에 문닫고 떠난 가게들이 대부분”이라면서 “경기 탓도 있겠지만 이렇게 작은 포구까지 찾아와 회를 먹을 것이란 예측이 틀린 셈”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회관 인근에 위치한 마을 복지회관. 90년대 초반에 지어졌지만 주로 예식장으로 활용될 뿐 개관 이후 주민복지와 관련된 강좌나 청소년 교육용 프로그램은 한번도 개설되지 않았다. 그러나 복지회관의 외관을 가꾸는 데 최근 2년간 5억원가량이 들었다. 400여평 부지를 추가 매입하고 잔디광장 조경공사를 하는 데 3억2천만원이 소요됐다.

영광원전과 5㎞ 반경 내에 있는 고창군 상하면에서 가장 큰 건물은 실내체육관이다. 700여평 부지에 체육관과 게이트볼 경기장을 짓는 데 11억원을 들여 2001년에 개장했다. 하지만 상하면 전체인구 3,200여명 가운데 이곳을 찾는 이는 하루 평균 30여명 선에 그친다. 이밖에도 마을회관, 노인정, 정자를 짓거나 도로를 ‘찔끔 찔끔’ 만드는 소규모 건설사업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기금 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원인은 지원체계 자체에 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에는 1억~30억원이 지급되지만 발전소 반경 5㎞ 이내의 읍·면지역으로 분산된 뒤 다시 이(里)·동별로 쪼개진다. 실제 사용되는 시점에서는 ‘푼돈’이 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중·장기 계획을 세워 집행할 만한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고, 주로 한해 반짝하는 사업에만 매달리게 된다.

기금운영을 주관하는 산업자원부는 “우리는 지원금을 지급할 뿐이고,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은 지역에서 정한다”며 지켜만 보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중·장기 사업을 권장하고는 있지만 표심에 자유롭지 못한 민선 지자체장과 주민자치 역량 부족으로 인해 단년 사업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관할 지자체 역시 “주민대표들이 모인 지역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 지자체가 해야 할 사업을 대신 해주는 측면이 많아 굳이 나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려대 행정학과 김태일 교수는 “기금 운용기관들이 매년 재원을 써버리는 데 급급해 사업을 얼마나 잘하는지 따지지 않는 탓”이라며 성과평가와 그에 따른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은 군인복지기금에서 연구활동비로 지원받은 돈을 용도외 목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지난해 8월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연구원은 준장 이상으로 전역한 회원을 고문 연구위원으로 위촉, 전역후 6년째부터 매달 15만원씩 줬다. 감사원은 “연구실적과 관계없이 퇴역 장성 회원들에게 일률적으로 지급, 사실상 연금형태로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금은 정확한 수요예측과 관리능력 부족으로 집행률이 저조하다. 병원이 응급환자 치료후 비용을 받지 못할 경우 대신 지급해 주는 응급의료기금의 경우 2002년까지 집행률이 10%대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관련예산을 예전 수준의 30% 정도(13억원)로 크게 줄였는데도 25%(3억4천만원)가 남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사업 담당자가 1명뿐이어서 대불(代拂) 신청건수 대비 81%, 신청액 대비 59%밖에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보험료 등을 통해 조성되는 여성고용촉진 장려금과 중장년 훈련수료자 채용장려금은 지난해 각각 1백93억원과 1백50억원이 책정됐지만 실제 사용된 액수는 60억원(31%)과 1억5천만원(1%)에 불과했다.

경실련 이원희 예산감시위원장은 “기금을 특정부처의 돈으로 여기지 말고 국가 전체의 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적정규모를 평가한 뒤 과다 적립된 기금을 일반회계로 옮겨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특별취재팀 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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