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14일 시리즈 첫회가 나간 이후 15차례의 기획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번 훑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수십년간 계속돼온 예산의 난맥상을 개선하기 힘들다. 그간 지적됐던 문제 사업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시리즈 보도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중간 결산해본다.
1부 첫회로 나간 속초 노리교. 수해복구비 30억원이 들어갔지만 도시계획조차 확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엉뚱한 곳에 덜렁 다리만 지어졌다는 경향신문 보도는 시민단체 활동에 불을 붙였다.
노리교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김준섭 사무국장은 “공대위 요구에 따라 시의회가 11월29일부터 시작되는 행정사무감사에 시청 관계자 등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출석시키기로 의결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의회가 행정사무감사에 머물지 말고 조사권을 발동해 의혹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길을 뚫은 지 열흘 만에 도로 사면이 붕괴된 태백시 상장~소도간 4차선 도로의 경우 보강 공사를 위한 1백50억원의 지방채 추가발행은 일단 보류시켰지만, 아직 정부 합동감사반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태백시민연대 허신학 사무국장은 “시청측은 ‘태풍 수해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는 입장 발표 외에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시의회가 사무감사를 한다고 해도 서류 검토와 공무원 추궁에 그칠 뿐”이라고 개탄했다.
속초와 태백 모두 지방의회에 자치단체를 견제하는 역할을 전적으로 맡기기엔 한계가 많아 시민단체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 경실련이 ▲경륜공단 적자 ▲동부산권 관광단지 개발 ▲유료도로 남발 등 15개 사업을 행정사무감사 중점 대상으로 선정·발표하는 등 각 지역 시민단체들의 ‘예산 지킴이’ 활동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정감사가 예산 문제에 과거보다 심도있게 접근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도 이번 시리즈의 성과다. 10월13일 국회 행정자치위의 전북도 감사에서 권오을 의원(한나라당)은 예천공항(9월21일자 보도)을 예로 들며 “내 지역구와 가까운 예천공항 운항이 중단된 상황에서 김제공항도 문을 열자 마자 폐항될 가능성이 크다”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한나라당 이재창 의원은 같은달 22일 행자부 감사에서 새주소 사업(10월1일자)에 대해 “협조가 필수적인 다른 부처와의 사전 합의 없이 진행돼 예산 낭비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의원은 전국 84개 시·군·구 우체국 집배장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해보니 새주소 체계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4.8%에 불과했다며 “새주소 병기실적이 43.5%라는 정부 발표는 매우 과장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먹구구식 타당성 조사(11월2일자)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무소속 최인기 의원은 “지난해 전국 15개 공항 중 김해·제주공항만 흑자를 냈을 뿐 나머지 13개 공항에서 1천10억원의 적자를 냈다”면서 “수요 예측 잘못으로 시설 활용률이 크게 낮은 데다 고속철 개통으로 승객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월7일 건설교통위의 도로공사 감사에선 “민자 고속도로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은 통행량이 과다하게 추정된 탓”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예산결산특위 소속 상당수 의원들은 시리즈 보도를 스크랩해 예산안 심의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국회 상임위 분석 자료 등과 달리 경향신문 시리즈는 실생활에서 예산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생생한 케이스 중심으로 접근해 실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천공항은 취재 당시만 해도 “곧 공항지정 해제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지만, 해를 넘길 공산이 커지고 있다. 비행기 운항 중단 후 1년이 다 되도록 운영 인원들이 일부 남아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측면의 예산낭비인 셈이다. 건교부측은 “국방부로 넘기는 방안을 협의중인데, 아직 국방부측 회신이 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당정회의의 단면(10월28일자)을 드러낸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지원의 경우 부산시가 요구한 6백47억원 중 예산에 반영된 3백35억원 외에 3백12억원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부산 출신 의원들이 예결위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APEC 지원특위 위원장을 놓고 감투 다툼을 하고 있다. 또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내년 예산안에 1천31억원이 배정됐으나, 담당부처인 문화관광부와 광주시가 아시아문화전당 입지선정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독자들의 제보 전화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보도 블록의 잦은 교체 ▲불요불급한 지자체 사업 ▲알맹이 없는 지역 축제 등이다. 한 독자는 “예산낭비 현장을 발견하면 바로 제보하기 위해 휴대폰에 제보 전화번호를 입력시켜 놓았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그동안 제보 내용을 토대로 시리즈를 진행해 왔으며, 앞으로도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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