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는 정부 예산을 심의·확정하는 ‘최종 파수꾼’이다. 그래서 국회 스스로가 쓸 자체 예산을 짜는 데 있어 누구보다도 엄격한 잣대가 요구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책임감을 망각하기 일쑤고, 기획예산처 등 관련 부처의 감시와 통제 역시 무르기 그지없다.
2002년 10월23일 국회 운영위. 2003년도 국회 예산안 심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국회도서관 보존서고동을 서고용 지하 2개층만 건축할 것이 아니라 지하주차장용 2개층을 추가해 짓는 것이 주차난을 해소하고 공사비도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수석전문위원) “의원 사무실과 도서관 주변 주차장이 포화상태입니다… 보존서고동 총 사업비를 증액할 것을 제안합니다.”(한나라당 임인배 원내부총무) “제안하신 대로 총 사업비를 변경해서 의결하고자 합니다. 이의 없으십니까?”(정균환 위원장)
이날 여야의 만장일치 의결로 보존서고동 사업비는 2백77억9천만원에서 4백32억8천만원으로 단숨에 1백55억원이 불었다. 이 증액 결정은 국회사무처가 기획예산처와의 협의도 없이 제멋대로 사업비를 확대, 예산처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같은해 11월5일 국회는 운영위 의결 내용을 팩스로 보내 예산처에 사업비 조정을 요구, 타당성 검증절차조차 밟지 않은 채 증액을 강행했다.
지난 7월17일 제헌절 저녁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김원기 의장 초청으로 노무현 대통령 등 4부 요인의 부부동반 만찬이 열렸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예산 증액이 필요합니다만….”(김의장)
이 사실을 전달받은 기획예산처는 ‘입법지원 및 정책개발비’라는 항목을 새로 만들어 내년도 국회 예산에 1백억원을 집어넣었다. 의원 299명에게 3천3백만원씩 돌아갈 수 있는 돈. 더구나 이 돈이 어떤 방식으로 지급될지 계획이 서지 않은 상태다. 사무처측은 “정책개발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준다는 원칙은 서 있다”며 “11월, 12월에 배분 방법을 다룰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1백억~2백억원의 돈은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국회는 보존서고동 지하층 공사비 1백85억원 외에 “지상층도 짓겠다”며 88억원을 추가 요구했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는 “행정수도 이전과 고려해 신규 건설은 보류해야 한다”며 삭감했다. 그러나 국회사무처측은 “국회 심의에서 이 부분이 다시 증액되면 예산처에서 적극 협조키로 했다”고 전했다.

예산처측은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이 국정감사와 상임위·예결위 심의를 무난하게 통과하려면 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속사정도 있다. 내년 예산의 경우 ‘뒷주머니’ 지적을 받아온 예비금을 크게 줄였다. 하지만 예비금에서 의장단 등에게 나가던 의정활동수행경비(9억6천만원), 국회운영대책비(1억2천만원) 등은 결산 때 영수증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로 이름만 바꿨을 뿐 금액은 오히려 늘었다.
각종 정부 사업비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각 의원실에서 “컴퓨터가 구형”이란 불만이 쏟아지자 국회는 행정자치부의 전자정부지원사업 예산에서 26억8천만원을 긴급히 마련, 정기국회 중 PC와 노트북을 추가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운영위의 사무처 국감에서 “국회 운동장이 낡았다”는 지적이 나옴에 따라 같은해 12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15억원을 지원받아 인조잔디와 우레탄 조깅트랙을 깔았다.
역시 국감에서의 ‘정책기능 강화’ 지적에 따라 올해 의정자료 발간비가 의원 1인당 5백만원에서 8백만원으로, 보좌직원 매식비 지급기준일이 80일에서 120일로 늘었다. 의원활동지원 인턴경비는 의원 1인당 1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증액됐다. 의원회관 냉·난방 시설을 보강하는 데 13억원이 투입됐다.
국회의 웰빙(well-being) 예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5억8천6백만원의 개원(開院) 경비예산은 ▲299개 의원실 전체의 도배·도장공사 7억원 ▲의장공관 개수공사 1억2천만원 ▲의원사무실 카펫 교체 4억원 등으로 짜여졌다. 등록서류 가방 한개 값이 13만원이다.
해외 출장 등 예산 기준도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국회의장은 해외순방 때 국무총리급 예우를 받아 하루 숙식비만 1,233달러(파리 기준·1백40만원 상당)에 이른다. 수행 의원들의 하루 숙식비는 573달러(65만원)다. 상임위 의원의 해외 출장 때는 항공·숙식비 외에 1,500달러(1백70만원)씩의 활동비가 별도 지급된다.
반면 의원들의 형식적인 출장보고서로는 외교 성과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간 논란을 빚어온 헌정회 연로회원(전직 의원) 지원금은 내년 예산에도 1인당 월 1백만원씩 반영돼 88억원이 편성됐다. 국회가 의원 193명(9월말 기준)에게 매달 국민연금 사용자 부담금 16만2천원씩을 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2중 혜택’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사무처는 “국민연금으로는 국회의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담보할 수 없다”며 “국회의원 공제제도 등을 검토중”이라고 답했다.

〈특별취재팀|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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