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이 바뀌어 새 국정과제가 제시되면 관가는 국정과제에 맞춰 추진할 사업을 찾느라 분주해진다. 문제는 국정과제 자체의 정당성을 떠나 공무원들이 조기에 성과를 보여주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졸속으로 흐르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래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나랏돈이 수백, 수천가지 사업에 뿌려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올해 국가균형특별회계의 도입과정과 함께 과거 정부의 ‘청와대 관심사업’들이 어떻게 짜여졌는지 집중 조명한다.
“적어도 제 임기 중에는 서울로만 올라오던 이삿짐 보따리를 다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전환점을 만들겠습니다.” 지난해 6월12일 대구 컨벤션센터.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대구 구상’을 발표했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지방화와 균형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국무회의는 ‘대구 구상’ 4개월 후 국가균형특별(균특)회계 도입을 위한 특별법을 심의, 의결했다. 지난 연말 국회 본회의도 통과했다. 국가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발족한 지 8개월만에 이뤄진 ‘초스피드 법 제정’이었다.
한달 뒤인 올해 1월29일 정부는 대전 정부종합청사에서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을 가졌다. 정부는 “균특 도입으로 지자체가 예산편성의 자율권을 갖게 됐고, 그 규모도 5조5천억원으로 9.6% 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과정과 속내를 들여다보면 ‘졸속’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 제정을 위해 지자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부터 반발이 상당했다. “균특회계를 한다는데, 도대체 달라지는 게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기획예산처와 산업자원부 등 해당부처들은 “일단 법부터 시행한 다음에 고쳐나가자”고 읍소했다. 이렇게 법 통과에만 혈안이 되다보니 정작 지역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핵심장치인 지역별 차등배분 모델은 마련되지 못했다.
뒤늦게 예산 배분방법을 마련하느라 지자체의 내년도 예산 신청 마감시한인 4월말이 다 되도록 ‘신청 한도액’이 내려오지 않았다. 지자체들은 예산처와 행정자치부에 전화하거나 출장을 보내 수소문했다. 결국 마감을 열흘 앞두고 편성 지침이 내려왔다. 이때부터 지자체는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의 사업 예산안을 급조하느라 또 한차례 난리법석을 피웠다. 신청 한도액은 “왜 우리만 적게 주느냐”는 지자체들의 반발을 우려해 과거 3개년도 지원예산액을 가중 평균했다. 그 결과 16개 광역시·도에 지원된 균특예산은 예년의 규모나 순위와 달라진 게 없었다. 균특회계가 결국 과거와 ‘균형’을 맞춘 꼴이다.
“기존에 지원하던 사업을 균특회계라는 새 주머니로 옮겨놓았을 뿐이지요. 한마디로 조삼모사입니다.”(안산시 관계자)

예산 편성의 자율권도 반쪽에 그쳤다. 예산 편성지침을 내려보내면서 지자체가 신청할 사업 유형을 미리 정해주는 ‘메뉴판’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16개 시·도의 ‘균특회계 예산안 신청 내역서’를 입수, 분석한 결과 ‘메뉴판’ 방식에 따른 개발사업 중복현상이 심각했다. 농어촌 소득기반 마련을 위한 체험마을이 대표적이다. 농촌전통테마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 어촌체험마을, 산촌마을, 생태마을, 안보관광마을…. 사업 내용도 주차장·도로 공사, 정자·마을회관 건립 등 천편일률적이다.
다음해로 이월될 것이 뻔한데도 예산이 추가 지원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경남 남해군이 추진중인 ‘이충무공 전몰유허지 개발사업’의 경우 올해 예산 70억원 중 97%(68억원)가 내년으로 이월될 예정인데도, 내년 몫으로 15억원의 균특예산이 배정됐다. 인접지역인 경남 산청군과 진주시는 차로 20~30분(30㎞) 떨어진 곳에 각각 20억원과 80억원을 들여 선사유적 박물관을 지을 예정이다. 중복투자 우려에 대해 산청군측은 “다른 지역에도 다 있는데 우리 군에도 박물관 하나는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총 4조3천억원이 투입되는 지자체 개발사업과 별도로 지역 혁신을 뒷받침할 1조2천억원의 혁신사업도 별로 다르지 않다. 대부분 연구소 등 건물을 짓거나 각종 기자재부터 들여놓겠다는 내용이다. 경남도의 대학내 골프연습장 공사(5억원), 대학 부속유치원 건립·교사인건비(5억원) 등 일부는 어떻게 이런 사업이 지역 혁신과 연관되는지 의문인 데다 실현 가능성조차 낮아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 윤용중 분석관(문화관광 담당)은 “중복·분산투자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전혀 보완되지 않은 채 수 천가지 사업이 벌어지게 됐다”며 “지역균형이란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위와 기획예산처는 뒤늦게 균특예산 배분모델과 성과지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 2006년부터는 용역 결과를 갖고 예산을 편성한다는 계획이다.
〈특별취재팀|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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