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말 정부는 2002 한·일 월드컵 경기장을 지을 도시로 10곳을 선정, 발표했다. 당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월드컵이 끝나면 상업시설을 유치해 흑자를 내겠다”고 장담하며 총 2조원의 건설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현재 약속을 지킨 곳은 서울 상암경기장뿐이다. 수원경기장은 상암보다 더 많은 돈이 투입됐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산편성 단계부터 월드컵이후 수익창출에 대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준비했느냐가 승패를 좌우한 것이다.

서울 상암경기장에는 대형 할인매장, 영화관, 스포츠센터, 쇼핑몰 등 130개의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축구경기가 없는 기간에도 하루 평균 2만5천~3만명의 인파가 몰려 불야성을 이룬다. 이제는 주차난을 빚을 정도다. 연간 1백18억원의 임대료를 받고 있으며 최소 3년에서 최장 20년까지 임대계약이 체결돼 있다. 지난해 올린 흑자가 60억원. 올해는 80억원으로 예상된다.

한·일 양국의 월드컵 경기장 20곳 중 유일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아시아축구의 허브 경기장 신축을 추진중인 싱가포르로부터 경기장 건설·운영 주체로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받아놓은 상태다.

그러나 상암경기장의 오늘은 치밀한 준비 때문에 가능했다. 개최도시로 선정되자마자 수익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매년 수십억원씩 적자를 내는 잠실올림픽운동장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수차례의 회의 끝에 서북부권 개발과 연계시키기로 하고 뚝섬 대신 상암을 부지로 선택했다. 이어 상업시설 유치 등 사후 활용방안에 관한 용역을 진행했고, 축구장 스탠드 뒤에 여유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쪽으로 설계를 확정지었다. 예산은 전적으로 이 결과에 따라 짜여졌다.

부경대 이재원 교수는 “상암은 축구장이 아니라 쇼핑몰을 짓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한 것으로 안다”면서 “처음부터 월드컵 이후를 겨냥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것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실제 상황은 편성 시점의 예상과 달랐다. 막바지 공사가 진행될 때까지 입점 신청이 한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2001년 5월 고건 당시 시장은 운영권을 월드컵경기장건설단에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으로 넘기면서 “수익모델을 반드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공단은 손사래를 치는 업계를 대상으로 심층적인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구장 설계에서 완공까지의 4년동안 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설계 당시의 유치 업종을 고집했기 때문”이란 진단이 나왔다.

김종철 당시 경기장관리소장(현 지하공동구 관리처장)은 설계도상의 유치 업종을 재검토키로 했다. 새로운 상업시설 유치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차원에서 ‘사활(死活)팀’이란 특별조직이 꾸려졌다. 사활팀은 입점시설 재선정을 위해 컨설팅 업체에 용역을 의뢰했다. 한편으론 직접 현장을 뛰어다녔다.

“전국의 유명 쇼핑몰, 백화점, 할인매장… 정말 안다녀본 곳이 없고요. 매일 경기장을 3바퀴 정도 돌면서 실제 유통현장에서 본 것과 설계도상의 계획을 비교하면서 어떤 업종이 적합한지 고민했어요.”(관리사업소 김영진 과장)

2002년 3월 새로운 유치계획이 마련됐다. 당초의 설계도와 일치하는 것은 할인매장과 영화관뿐이었다. 체육용품점은 서울 동대문운동장과 중복되며 사양업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새 업종을 선택한 사활팀은 앉아서 투자자를 기다리지 않았다. 관련업계 관계자들을 만나서 투자를 유도하는 ‘세일즈맨’으로 변신했다. 할인매장을 끌어들이기 위해 까르푸, 이마트, 킴스클럽, 메가마트 등 관련업체의 본부장 모임에 찾아가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영화관 투자가 난산을 거듭하자 ‘사활팀’은 CGV와 메가박스 등 선두업체간 경쟁심을 자극시켜 투자를 이끌어냈다. 아울러 상암 인근의 상업시설 현황과 주민 수요조사를 통해 사우나, 쇼핑몰, 예식장 및 피로연식당, 병·의원이 들어서도록 했다.

입찰도 월드컵 경기가 끝난 직후 실시, 월드컵 열기를 최대한 활용했다. 이를 위해 월드컵 기간 중 입찰 참가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경기장에서 가졌다. 이런 노력 덕에 53억원으로 예상했던 입점시설의 총 낙찰가격을 1백15억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사업자 유치가 안돼도 할 수 없고, 공무원이 행정절차만 지키면 그만이지… 만약 그런 생각으로 임했다면 흑자 내기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마음먹고 계획 짜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정인준 현 관리사업소장)

-‘덩달아 건설’ 수원경기장 애물단지-

수원 월드컵경기장. 서울 상암처럼 경기장 안에 복합쇼핑몰 등을 유치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다. 스탠드 뒤편엔 자투리 공간밖에 없다. 게다가 배관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다. 애초 설계할 때부터 경기장 짓는 데만 급급해 사후 활용방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경기장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려고 해도 막대한 추가 재원 투입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원 경기장이 착공된 것은 1997년 6월. 당시 각 지자체들이 “우리 지역에도 월드컵 경기장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여론에 휩쓸려 앞다퉈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 수원시는 “국비 지원을 일절 받지 않겠다”는 조건까지 내걸면서 유치 티켓을 따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사업을 시작한 상황에서 기부채납 방식으로 경기장을 지어주기로 했던 삼성이 외환위기 직후 손을 떼버렸다. 재원은 경기도와 수원시가 6대 4의 비율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수원 경기장 관계자는 “비용 부담 때문에 몇차례의 설계변경을 거쳐 규모를 축소해야 했다”며 “공사도 2001년 컨페더레이션컵 대회를 치르기 직전에 겨우 끝낸 터라 활용방안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2000년 2억원의 거금을 들여 외국 컨설팅회사에 용역을 주기도 했지만 용역 결과가 신통치 않자 덮어버렸다. 적극적인 세일즈나 수요조사는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게임장, 아이스링크장 등을 유치해보려 했지만 업자가 나서지 않자 곧 포기했다.

결국 상암경기장에선 ‘사양산업’이라며 규모를 축소했던 스포츠센터와 사무실 임대 정도가 추진해온 수익사업의 전부였다. 그나마 스포츠센터는 지난 5월에야 개장했고, 예식장·영화관·레스토랑도 지난해 하반기 임대사업이 겨우 완료됐다.

특히 월드컵이 끝난 후 경기장 운영재단은 퇴직 공무원들이 한자리씩 보직을 꿰차는 ‘낙하산 부대’로 전락했다. 운영재단 박종희 사무총장은 “잠시 머무르다 가는 탓에 퇴직공무원들도 그간 ‘일 벌이지 말자’ 주의였고, 그러다보니 중장기 계획은 물론 민자유치에 손을 놓다시피 해온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간 수십억원의 적자를 거듭하던 수원 경기장은 지난 9월말에서야 본격적인 민자유치사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경기장 옆 주차장에 할인매장, 컨벤션센터, 식당, 의류타운 등을 짓겠다는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라고 밝히고 나섰다. 이것도 때마침 수원 ‘이의지구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지역의 경기장들은 더하면 더했지 나을 바가 없다. 대구(올해 예상적자 29억7천만원), 인천(27억1천만원), 대전(16억8천만원), 광주(16억7천만원), 부산(10억6천만원) 등 전국 곳곳의 월드컵 경기장은 아무런 대책조차 세우지 못한 채 지자체 재정난을 가중시키는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특별취재팀|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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