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청양군 정좌3리. 너른 들녘에 드문드문 인가가 보이는 이 마을에는 전체 30가구 가운데 노인 혼자서 사는 독거(獨居)가구가 15집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살고있는 주민 이순덕씨(70)는 “나머지 절반도 부부만 사는 60·70대 이상 노인들”이라며 “한해가 다르게 빈집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 집 뒤편 산비탈에 있는 김모씨(69·여) 집을 찾았다. 허름한 툇마루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김씨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영감이 세상 뜨신 지 11년째예유. 영감 있을 땐 돈 꿔다가 병원도 가고 침도 맞았는디, 요즘은 속이 너무 쓰려서 잠도 못자유…. 밤새도록 테레비 틀어놓아서 지난달 전기요금이 2만8천원이나 나왔슈.”
진료비(본인부담금) 면제를 받을 수 있지만 버스 정류장까지 나가는 데만 10분 넘게 걸린다. 관절염 때문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영세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게 자랑도 아니구유… 보험카드 내밀기도 싫어유.” 정 못견딜 지경이 돼야 병원에 간다는 얘기다.
김씨 집 옆에는 흙으로 얼기설기 지은 오두막이 있었다. 밭일을 나갔는지 방문이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이 집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는 85, 86세쯤 됐는데, 도시에 사는 아들이 있어서 기초생활보장도 받지 못하고 품 팔아서 어렵게 살아간다. 며칠전에는 여든살 할머니가 세상을 등졌다. 평생 보듬고 살던 뇌성마비 아들을 3년 전 시설로 보낸 뒤 외로운 나날을 보냈다.
청양의 농촌 노인들에게 복지의 손길은 멀기만 하다. 청양은 65세 이상 인구가 6월말 현재 8,275명으로 전체 인구의 22.7%에 이르는 ‘초고령사회’. 이중 독거노인은 전체 노인의 21.1%인 1,748명이다. 주민 5명 중 1명 이상이 노인이고, 노인 5명 중 1명이 혼자 사는 셈이다.
그러나 자원봉사자 파견센터 등 재가복지시설이나 요양원 같은 노인복지시설은 전혀 없다. 재정자립도가 13.4%로 열악한 상태여서 시설을 지을 엄두도 못낸다. 설사 어찌어찌해서 시설을 세우더라도 계속 운영할 자금이 더 큰 걱정이다.
“폐교를 활용해 자원봉사자 파견센터를 해보겠다는 곳이 있기는 한데, 일단 보류시킨 상태입니다. 국비·도비 지원도 있지만, 군비 부담이 너무 커서….”(노인복지담당 김달영 주사)
노인 전원에게 지급되는 교통수당은 3개월에 2만5천원. 이중 85%가 군비여서 이 돈만 연간 7억원이 들어간다. 청양군 노인복지 예산(12억원) 중 절반 이상이 교통수당에 쓰이는 셈이다. 이희경 부군수는 “군청에서 이동목욕차를 운영하는 등의 사업을 펴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군청 여비, 수용비를 줄여 경로당 연료비를 대는데도 난방 10시간 중 3~4시간분밖에 지원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운영비 월 6만원, 연료비 연 60만원(국비 30만원, 군비 30만원)이 경로당 지원비의 전부다. 그나마 무료급식 등 지역 교회 등의 봉사활동이 ‘이 대신 잇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역주민들에게 ‘종합병원’ 노릇을 해온 청양 보건의료원. 말끔한 3층 건물로 2001년 새로 지어졌다. 그러나 변변한 초음파 의료기조차 없다.
배병무 보건사업과장은 “국비 30%, 도비 10%, 군비 60%로 운영되는 의료원 재정으론 고가 장비는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병상이 20개 있지만 평소 6개 정도만 이용된다. 청양 노인회 박승일 사무국장은 “월 1백여만원 받는 공중보건의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하려고 하겠느냐”며 “중병에 걸리면 멀리 외지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원측도 방문검진 등 건강증진사업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고 있다. 1주일에 6개의 경로당을 방문, 기초검진을 한다. 하지만 방문사업을 맡고 있는 전용화 지역보건계장은 “정작 노인들이 필요로 하실 땐 찾아뵐 수 없다”며 “혼자 사는 말기암 노인들이 진통제 주사도 맞지 못한 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다 겪은 뒤 최후를 맞는 것을 볼 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 조사결과 전국 234개 시·군·구 가운데 재가복지시설이 전혀 없는 곳은 101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시설이 서울 등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 노인이 많은 농어촌지역에는 절대 부족하다.
우리나라가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지만, 정부의 노인복지 예산은 지난해 4천77억원, 올해 4천8백19억원으로 각각 전체 예산의 0.37%, 0.41%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지난해 치매요양병원 신축·증축·장비보조 예산 2백81억원 중 2백43억원이 쓰이지 못한 채 이월되는 등 상당수 사업이 겉돌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노인복지연구팀장은 “시설 건립이 대부분 ‘국비와 지방비 5대 5 비율’로 이뤄져 재정이 나쁜 시·군·구는 잘 진행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이 곳곳에서 흥청망청 쓰여지는 가운데서도 지원의 사각지대에 갇힌 노인들의 신음소리가 낮게 낮게 퍼져나가고 있다.
〈특별취재팀|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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