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라살림 규모(통합재정 기준)가 1백80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예산의 편성에서부터 심의·집행·결산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검증장치가 없다. 그러다보니 낭비되거나, 엉터리로 쓰이는 사례 등이 해마다 되풀이돼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경향신문은 예산감시 분야에서 활약해온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으로 장기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론 안된다’를 싣는다.

[예산 대해부] 1-4. 허공에 뜬 지역개발/해남 관광단지

[경향신문] 2004년 09월 23일

한반도의 땅끝, 전남 해남군 서북쪽에 있는 화원면. 3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화원반도’로도 불린다. 주변 자연경관이 수려해 정부와 한국관광공사가 호남권 관광산업의 전초기지로 삼은 곳이다. 요트 300척이 접안할 수 있는 마리나(선착장) 시설과 27홀 규모의 골프장, 관광호텔, 별장, 워터파크(물놀이 공원), 해수욕장, 컨퍼런스 시설, 조각공원, 쇼핑센터 등을 세우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1994년 사업 시행이 허가되면서 본격 시작된 이 사업의 완공 목표 연도는 2004년, 올해다.

진척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화원으로 향했다. 고속철도 호남선의 종착지인 목포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달린 지 30분만에 단지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머릿속 상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입구쪽만 도로포장이 돼 있고, 700여m를 지난 지점부터는 자갈이 섞인 비포장 흙길이 시작됐다. 크고 작은 웅덩이가 곳곳에 파여 차는 쉴새없이 흔들렸다. 2㎞쯤 갔을까. ‘공사중 진입금지’와 우회도로를 알리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화살표를 따라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단지 조성계획의 핵심지역인 내주마을. 마을 앞 갯벌 20여만평을 메우는 준(準)간척작업을 통해 조성되는 부지에는 요트 선착장과 부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복토작업에 쓰여야 할 거대한 흙더미는 마을과 갯벌 사이에 제방처럼 쌓여 있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바다를 매립할 수 있는 매립허가 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가 매립허가를 갱신해줄 때까지는 공사 진도가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 마을 한쪽에서 단지 기반공사가 진행중이지만 전체 공정률은 17%에 머물러 있다. 가끔 지나는 덤프트럭의 흙먼지 속에서 굴착기의 굉음만 간간히 들릴 뿐이다.

정부가 민자를 유치해 올해 말까지 위락시설을 세우겠다던 예정지에는 벽돌 한장 놓여 있지 않다. 잔디스키장이 들어설 곳은 야산 상태 그대로다. 10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도 민자투자는 현재 0원이다.

이처럼 단지 개발이 허공에 떠 있는 이유는 주민 토지보상 협상이 장기화했기 때문이다. 관광공사측은 “보상비 재평가작업이 모두 다섯 차례나 반복되면서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1995년 시작한 보상작업은 보상금에 일부 농산물이 계산되지 않은 것이 뒤늦게 문제되면서 이듬해 중단됐다. 97년에는 해남군이 농로(農路)를 보상토지에 포함, 보상비를 과다지급한 것이 감사원에 적발돼 다시 멈췄다.

98년 외환위기로 완전 보류됐고, 2000년 7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사업 재개를 지시할 때까지 보상작업은 제자리 걸음을 했다. 이후 주민 이주단지 조성문제로 갈등을 겪다 지난해 4월에야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정부의 의지 부족도 한몫을 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공동 사업주체였던 전남도가 사실상 손을 뗀 채 뒷짐을 지고 있고, 중앙정부도 대통령이 한마디를 해야 마지못해 도움을 주는 등 단지 조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현재까지 투입된 사업비는 모두 8백20억원. 토지 매입과 기반 조성, 진입로 공사에 들어갔다. 진입로의 경우 93년 환경영향평가 후 “7년 안에 착공을 하지 않으면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2000년 가을 ‘면피성’ 공사가 시작됐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1백40억원 가량이 들었지만 4년째 방치돼 있다.

단지 조성 목표 연도는 2011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이에 따라 추가 부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총사업비는 9천7백60억원으로 94년 애초 계획 당시보다 2천억원 가량 늘게 됐다.

이 가운데 민자투자비(7천8억원)를 빼고 정부와 전남도, 해남군, 관광공사가 져야 할 부담은 2천7백52억원. 계획보다 38.7%, 7백68억원이 급증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잠정 추산액’일 뿐, 얼마가 더 들어갈지 알 수 없다.

주민들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단지 안에 살던 110가구 가운데 40여가구는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1억~2억원대의 큰 돈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빈털터리가 된 경우가 수두룩하다.

“(공사) 한다 한다 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구랴. 이주단지로 들어가야 하는디, 돈만 오질라게 비싸졌어. 그때 보상비랑 이주단지 입주비용이랑 2배 가량 차이가 난당께.”

장영숙씨(55·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단지내 해수욕장 인근에서 회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요구, 또 하나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 골프장 건설 역시 공사 단가를 둘러싼 건설업체와의 이견으로 착공조차 못한 상태다. 화원단지의 미래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특별취재팀|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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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관광단지 추진 일지

1988·9 노태우 대통령, 호남관광단지 개발 지시
1992·10 화원관광단지 지정
1995·10 단지예정부지 토지매입 착수
1996·4 토지보상비 재평가 요구로 매입 중단
1997·7 주민의견 일부 반영, 토지매입 재개
1998·5 외환위기로 개발사업 중단
2000·7 김대중 대통령, 재개 지시
2002·12 단지기반조성 및 골프장 공사 기공식
2003·4 주민 생계대책 요구로 기반공사 지연
2004·9 건설비용 문제로 골프장 착공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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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시민행동 - 경향신문 공동기획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론 안된다> 중 4번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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