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나라살림 규모(통합재정 기준)가 1백80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예산의 편성에서부터 심의·집행·결산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검증장치가 없다. 그러다보니 낭비되거나, 엉터리로 쓰이는 사례 등이 해마다 되풀이돼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경향신문은 예산감시 분야에서 활약해온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으로 장기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론 안된다’를 싣는다.
[예산 대해부]Ⅰ-3. 비행기없는 공항/예천 르포
[경향신문 2004-09-20 19:06]
2004년 9월.
중부고속도로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중앙고속도로를 달린 지 2시간30분. 경북 예천군 유천면의 예천공항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벽면과 파란색 지붕의 최신식 2층 건물이 논밭 사이에 덩그러니 서있다. 철제문과 바리케이드로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 신청사는 건설교통부가 3백86억원을 들여 2002년 12월 준공했다. 여객터미널 5,676㎡에다 대형 항공기 2대가 설 수 있는 1만2백㎡의 계류장은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다.
여객 수송 능력을 연간 30만명에서 1백만명으로 늘렸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5월 마지막 노선인 예천~제주 노선을 폐지할 때까지 1년반 정도 문을 열었을 뿐이다.
그나마 운항 중단이 거듭되는 바람에 실제 운항일수를 따지면 6개월 남짓이다. 승객 감소로 적자가 불어난 탓이었다.
한국공항공사 예천지사 이종봉 시설팀장과 함께 들어선 2층 출발 대기장은 검색대 하나만 놓여진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의자 등 집기들은 모두 다른 공항들로 옮겨졌다. 이팀장은 “직원 16명 중 6명만 남아서 청산작업을 하고 있다”며 망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청사 밖 계류장엔 승객들이 타고 내리던 커다란 탑승교가 비행기를 기다리며 허공에 떠있다. 건교부는 공군 등에 신청사를 넘기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건물 자체가 공항 용도로 지어진 터라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불가피해 보인다. 군청 앞에서 만난 한 촌로는 “공항이 어떻게 되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며 퉁명스런 대꾸로 지역 민심을 전했다.
어쩌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5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2000년 총선을 앞둔 1999년 10월7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경북 유교문화권 개발현장 점검을 내세워 영주와 안동을 방문했다. 이날 나들이에는 김중권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 김기재 행정자치부 장관, 권노갑 국민회의 고문 등 고위인사들이 대거 수행했다.
“경북 북부지역은 역대 정권으로부터 소외됐고, 인구도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희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은 지역인사들과의 오찬 인사말을 통해 경북관광공사 발족, 동해 7번국도 확장 등과 함께 예천공항의 확장을 약속했다. 기본조사 설계용역 단계에 머물러 있던 예천공항은 두달 뒤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2000년 11월. 국회 건설교통위.
“예천공항은 올해까지 공정률이 35.5%에 불과합니다. 건교부에서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렇습니까, 기획예산처에서 건교부를 무시해서 그렇습니까?”
경북 김천 지역구의 임인배 의원(한나라당)은 김윤기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임의원이 “도대체 공사현장에 몇번이나 가봤느냐”고 압박하자 건교부 관료들은 “자주 가보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쩔쩔맸다. 당시는 이미 이용객이 급감하고 있을 때였다. 97년 37만8천명, 98년 21만7천명에서 급전직하, 2001년 8만6천명으로 떨어지더니 2002년엔 3만1천8백명으로 줄었다.
2001년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5~6시간 걸리던 서울행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마당에 2배 이상 되는 항공료를 내면서 비행기를 탈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삽질은 멈추기 힘든 걸까. 2001년 1백60억원, 2002년 1백12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도 나머지 2억6천만원이 고스란히 집행됐다.
국민 세금보다 ‘표’를 앞세우는 정치논리, “IMF사태 등의 일시적 영향일 뿐”이라던 관료들의 ‘경주마 행정’이 어우러져 빚은 참극이었다.
〈특별취재팀|권석천·조현철·정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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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시민행동 - 경향신문 공동기획 시리즈 <나라살림, 이대론 안된다> 중 3번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