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자신의 미니홈피를 찾은 100만1번째 네티즌과 일일 데이트를 가졌다고 한다. 비록 단발성 이벤트이긴 하지만 정치인들이 불필요한 권위의식을 떨쳐 버리고 네티즌들에게 가깝게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표뿐 아니라 이미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인터넷 공간에 저마다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개설해 심혈을 기울여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에 불고 있는 블로그와 미니홈피의 열풍이 급기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까지 불어닥친 모양이다. 하기야 정치인들은 원래 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니 네티즌 사이에서 최근 가장 유행이 되고 있는 블로그와 미니홈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의 사이버 정치는 처음엔 홈페이지 기반으로 시도됐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기껏해야 자신의 온라인 홍보와 일방적인 의정보고 차원으로만 운영되던 정치인 홈페이지들은 당연히 네티즌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 온라인 팬클럽이었다. 특히 2002년 대선에서 노사모가 보여준 활약상에 자극받은 유명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자신의 팬클럽 결성에 나섰다.
하지만 팬클럽을 온전히 관리하는 일은 홈페이지를 충실히 관리하는 것보다도 몇 배나 더 힘든 일임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티즌들의 자발성에 기반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조직된 다수의 팬클럽들은 이미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지 오래다. 그리고 또 다른 팬클럽들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맹목적 지지로 일관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네티즌들로부터 비판과 외면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됐다.
홈페이지와 팬클럽에 이어 이번 17대 국회 들어서 또 다른 사이버 정치의 무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블로그와 미니홈피이다. 블로그와 미니홈피는 기존에 네티즌들의 활동 공간이던 홈페이지와 게시판이 제공하던 정보 교류의 기능, 그리고 커뮤니티를 통해 형성되던 인적 교류의 기능이 종합적으로 구현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그 어떤 공간보다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상당수 정치인들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는 그 기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 채 단지 네티즌들의 유행을 표피적으로만 따라가는 듯한 모습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정치인들이 개설해놓은 블로그와 미니홈피 중에는 의정활동 중에 경험한 에피소드를 올려놓거나 네티즌들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곳도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상당수 정치인들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들은 여전히 일방적인 온라인 홍보와 의정보고의 수단에 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것과 똑같은 정보가 고스란히 블로그와 미니홈피에도 실려 있어 대체 무엇 때문에 두 개의 매체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블로그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트랙백’이나 ‘RSS’ 등 블로그 간에 자동으로 정보를 교류시켜 주는 기능을 온전히 활용하고 있는 사이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한마디로 무늬만 블로그와 미니홈피인 곳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정치인들의 블로그와 미니홈피가 그 고유한 기능에만 충실해줘도 그곳은 훨씬 더 유용한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방대한 의정정보의 창고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하게는 네티즌과 정치인이 이마를 맞대고 쌍방향 소통을 나누는 민주적 공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왕에 개설해 놓은 정치인들의 블로그와 미니홈피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 정치문화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진원지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글은 민경배의 사이버문화읽기 에피소드 http://epi.ww.or.kr/cyber?item_id=4363에 올려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