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사 초유의 파업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노사간에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업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파업은 눈에 보이는 손실보다, 불신과 대립의 골을 깊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해가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업을 밖에서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배부른 노동조합이 파업을 한다고 비난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걸 잘 알고 있는 조합원들이 왜 파업을 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에는 임금인상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비정규직의 차별폐지, 여수지역의 발전을 위한 기금의 조성 등으로 이기적인 노동조합이라면 굳이 요구할 필요가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노동조합의 의도와는 달리 높은 임금수준만을 언급하면서 배부른 노동조합의 파업이라고 따가운 시선을 보냈습니다.
회사는 그 동안의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노동조합측의 파업을 예상했던 것처럼 원칙에 따른 대응을 했습니다. 파업이 계속되자 중단시켰던 생산시설을 다시 가동해서 파업이전의 상태로 돌려 놓았으며 법을 어긴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법과 사규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의 노동조합 비판에 힘을 얻은 듯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LG정유노동조합의 파업은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궤도연대공투본의 총파업도 끝나고 얼마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교섭이 타결되면서 이번 하투도 마무리되었다고 보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LG칼텍스정유에게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파업은 노사에게 새로운 경험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한번도 파업을 해보지 않았던 노동조합은 전국적인 관심 속에서 파업투쟁을 하였고, 회사측은 생산시설의 중단을 감수하면서도 노동조합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아직 감정도 격하고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떠한 말씀을 드려도 받아들여질지 걱정스럽지만 몇 가지 당부말씀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우선 파업 실패의 결과입니다. 더욱이 당사자에 의한 해결보다는 여론과 언론을 통한 타의적인 해결방식은 최선책이 될 수 없습니다. 회사는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의 기를 확실히 잡아서 회사의 말을 잘듣는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했는데 여기서 확실히 하겠다는 생각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노동조합을 좋아하는 사장님이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을 무시하는 사장님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회사를 견제하면서 회사와 함께 하는 노동조합은 필요합니다.
회사가 노동조합의 요구를 막무가내로 거부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국세청에 이의를 제기하였다고 하지만 천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면서도 기업공개를 못하고 있다는 점, 정규직을 줄이면서 외주나 도급업무 등을 확대한 점, 회사의 터전인 지역발전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점 등은 정규직에 대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수준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LG칼텍스정유는 매출이 10조가 넘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한 말씀드립니다. 왜 이 사회는 당연한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에 대해 비판적이었을까? 소소한 사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교섭이 결렬되는 시점에서 노조의 임금인상요구는 10.5%였습니다. 요즈음의 청년실업과 최악의 불경기에 시달리는 시민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LG칼텍스정유내의 도급회사 사원들과 계약직이 계속 증가해 6백여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동안 노동조합은 이런 변화를 소극적으로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았나요? 금년도 노동조합의 파업을 보면 유난히도 일반 서민과 밀접한 파업이 많았습니다. 버스, 지하철, 항공 등 일상 생활에 직결되는 회사에서 파업이 발생해서 일반 시민들의 의견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극심한 불경기는 시민들의 인내력도 다 앗아가 버렸습니다.
노동조합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파업을 벌이면서 힘든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노조가 요구하는 내용들이 여수지역의 한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동안 누적된 문제를 파업을 통해 한번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제 노동조합과 회사는 서로 한발 물러서서 머리를 맞대고 정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내에서 노사가 해결할 수 있는 과제와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은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행법이 불만스럽다고 해서 법을 무시하는 행동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명분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또한 법과 원칙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한 순간 대립적일 수는 있지만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통해 발전한 회사는 없습니다. 회사가 발전하지 못하면 노동조합도 근로자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서로 상호불신과 비난에서 벗어나 서로 힘을 합쳐서 나가시기 바랍니다. 파워게임이 아닌 진지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시길 기원합니다.
2004년 8월 23일, 시민행동 이영면 드림
좋은기업만들기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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