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범 이학만씨가 숨어있다고 추측된 돈암동 아파트 단지에 대한 경찰의 조사가, 이학만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여 ID를 개설한 한 초등학생 때문에 발생한 혼선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초등학생이 이학만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얻게 된 것은 바로 경찰의 수배전단이었다고 합니다. 주민등록번호 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는 이 때, 경찰만이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사진 : 노컷뉴스)
수배전단에 주민등록번호를 공개하는
몰상식한 관행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경찰이 살인범 이학만씨에 대한 주민등록번호를 수배전단을 통해 공개했다가 한 초등학생이 이를 도용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함으로써 오히려 수사에 혼선만 빚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경찰이 수배전단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유출함으로써 물의를 빚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2년 단병호 의원(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6명의 민주노총 관계자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어 50여개 이상의 성인사이트에 단병호 의원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계정이 만들어진 바 있다. 이 때 경찰은 모든 수배전단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으나 오늘 또 이같은 사건이 반복된 것이다.
주민등록번호의 유출은 작게는 인터넷 사이트 회원 가입에서부터 크게는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발급에 이르기까지 각종 명의 도용의 온상이 되어 왔다. 시민행동이 지난 해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국민의 26% 이상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발표에서도 주민등록번호 및 ID 도용이 지난 해 3,400건에서 4,500건으로 증가, 국가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미 2년 전에 재발 방지까지 약속한 잘못을 되풀이하고도 별 문제가 안 된다는 식의 반응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리 경찰의 모습이다. 경찰 수뇌부, 그리고 경찰청의 담당 부처이자 주민등록번호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는 이같은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관행이 어째서 되풀이되고 있는지를 조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제에 이같은 관행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제도 자체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