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영역에서 독보적인 웹, 앱 개발자들의 집단인 UFO 팩토리, 그리고 최근 한겨레 21과 시민입법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정치플랫폼 개발자 그룹 빠띠에 참여하고 있는 권오현 님을 열세번째 소셜런치에서 만났습니다. 권오현 님의 활동들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최근 소셜 영역에서 작은 화제가 되었던 UFO팩토리와 슬로워크의 합병에 관한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본문 인터뷰 중에 익숙하지 않은 기관이나 단체, 사업 등이 나올 경우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살펴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개발자 권오현이라고 합니다. 개발자들이 모여 여러 가지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3년 전에 UFO 팩토리를 창업해서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UFO팩토리는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단체나 그룹들과 파트너쉽을 통해 그들이 하려는 일들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는 개발자집단입니다. 3년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매년 성장해왔고, 얼마 전 3주년을 맞아 슬로워크랑 합병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빠띠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 미디어,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고요. 원래부터도 나이가 마흔이 되면 개발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적 작업을 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가 작년 말쯤에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발표 자리에서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 5년 전 이력은 얘기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다음아고라 개발자였던 건 얘기 안하시네요.
예. 웹2.0 한참 유행할 때 다음아고라 개편프로젝트 개발 리더였고요. 블로거뉴스, 다음뷰 프로젝트 등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역할을 했었죠.
우리가 알던 그 다음을 만드신 분이네요. 요즘은 우리가 알던 그 다음이 아닌 것 같던데요.
제가 혼자 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작업들 때문에 다음이 많이 힘들어지긴 했으니까, 다음도 그렇고 카카오도 계속 세무조사 받고.. 그러다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고요..
합병 얘기를 하셨으니 말인데, 합병의 계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슬로워크는 디자인 영역에서, 우리는 IT 영역에서 소셜섹터를 지원하는 일을 해오면서 보니 합병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더라고요. 우리는 스무 명 정도 되는데 디자이너가 서너 명이고, 그 쪽은 서른 명 중에 디자이너가 훨씬 많고, 개발자는 저희보다는 적었거든요. 시너지가 난다 할 수 있죠. 소셜 섹터에서 제대로 된 퀄리티가 되는, 좋은 가치와 좋은 비전을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만들어보자는 게 합병하면서 얘기한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근데 그게 되려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죠.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영리 쪽에 있든 비영리 쪽에 있든 현업에서 인정받고 대우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지속가능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이 쪽으로 올 수 있고. 그런 것들을 각자 고민하지 말고 더 크게 세팅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업에서 인정받고 대우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지속가능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이 쪽으로 올 수 있죠"
사실 생각 비슷하고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모여도 하나가 되는 건 쉽지가 않은데, 예전부터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많이 해온 경험이 있었나요?
그렇지는 않은데 와서 보니까 문화가 비슷하고 생각보다 잘 맞아 들어가더라고요. 팀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화가 그렇고. UFO팩토리는 원격근무를 더 많이 하는데 슬로워크도 그걸 꾸준하게 준비해오고 있었고요. 또 슬로워크는 안식월 제도가 있다면 우리는 목표치를 달성하는 전제 하에서 휴가가 팀 자율이예요. 합병하기 전부터 이런저런 특징들을 서로 간에 계속 확인해왔어요.
UFO팩토리가 훨씬 더 자율적인가요?
우리는 자율적이지만 더 가혹합니다. 원칙이 몇 개 없고 원칙만 지키면 완전 자율이예요. 저희는 원격근무를 해요. 회사에 나오려면 언제 나오겠다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거든요. 팀원들이 각자 정한 급여와 운영비를 산정해서 매출 목표를 정하는데 다른 회사만큼 높지는 않습니다. 왜냐 하면 초기에 저희를 스스로 UFO 유랑단이라고 불렀는데, 사무실을 내지 않고 여기저기 빈 사무실들을 임시로 빌려 썼죠. 나중에 관공서 일을 하게 되서 사무실을 얻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도 매우 작은 공간을 얻었어요. 책상도 몇 개 없으니까 오전반 오후반 식으로 나눠야 했거든요. 그렇게 고정비를 줄이고 팀별로 급여에 연동해서 주어지는 매출 목표를 채우기만 하면 출퇴근이든 휴가든 노 터치입니다. 우리가 비영리 쪽 일이 많아서 매출 목표를 채우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일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고. 목표 이상을 벌게 되면 절반은 인센티브, 절반은 내부유보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쉬어도 되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솔루션을 만들어도 됩니다.
매출 목표를 달성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올 해 초에 그와 관련된 원칙을 정했는데요. 누가 봐도 열심히 했는데 못했다면 이해를 하자, 대신 다음 해에 채우려고 노력하자. 그러나 누가 봐도 아니다 싶으면, 가혹하게 압박을 하죠.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그 선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습니다. 우리 고객들이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일을 많이 해야 하긴 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최대한 낮게 잡습니다.
개발자들은 비영리랑 일할 때 어떤 경험을 하면 재미있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합니다.
담당자랑 같이 일할 때 우리를 하청업체처럼 대하지 않고 파트너로서 우리가 내는 아이디어를 고마워하고 하면 재밌어합니다.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되어 보람을 느낄 때요. 우리는 매우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가지고 와도 그걸 서비스화하는 걸 많이 해요.
우리는 사회적 가치를 세 가지로 봐요. 첫째, 단체나 사회적 기업이 하려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 둘째, 우리 멤버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개발자들이 영혼없는 일이 아니라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생계의 위기 없이 시간적, 문화적 여유를 가지는 것이죠. 육아 때문에 저희 회사에 온 남자 개발자도 있어요. 셋째는 직접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고요. 그런데 요즘 우선순위를 좀 바꾸고 있습니다. 멤버들이 잘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요. 그간 힘들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완전 비영리 단체보다는 좀 더 돈이 있는 재단이나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등의 일을 많이 하게 됐고, 단순홈페이지는 많이 안하는 편이긴 합니다.
"남들이 지금 관심없어도 그 문제에 계속 집중하는,
그런 사람들이 잘 활동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사람들이 모일 광장을 만들고,
그런 작업들이 의미있는 작업이 되도록 이름붙여주는 것을 하려고 해요"
매우 바쁜 시간이었을 텐데 그 와중에 빠띠 프로젝트는 왜 하게 되신 건가요?
사회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UFO팩토리를 만들었고 2년 반동안 정말 많은 곳들과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근데 내가 직접 하고 싶은 일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년 말부터 다행히 조직이 안정되기도 했고 직접 개발하는 시간이 감소하면서 여유가 좀 생겼죠.
빠띠는 무슨 뜻인가요?
불어인데요. 참여라는 의미도 있고, 파티란 의미도 있고, 정당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곳, 정당처럼 정치를 다루는 곳, 그러면서도 파티처럼 즐거운 곳을 뜻합니다. 실제로는 정치라는 영역에서 온라인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조직이고요. 요즘 정리해본 바로는, 온라인에서의 정치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어요. 첫째, 조직의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플랫폼. 둘째, 현재 빠띠 웹사이트로 보여지고 있는 온라인 광장. 그러니까 온라인 상에서 신인들, 또는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의사를 종합해나가고, 나중에는 세력이 될 수도 있는 시민들의 영역을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정부, 국회, 지방정부와 시민들이 만나는, 시민참여와 감시를 위한 플랫폼. 개발팀으로서의 빠띠는 이 셋을 모두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프로젝트에 이름을 붙이는 걸 좋아하는데요. 일상에서의 의사결정을 돕는 플랫폼으로 카누 프로젝트. 온라인 광장은 빠띠 프로젝트.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카레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한겨레21과 하는 시민입법프로젝트가 카레 프로젝트의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죠. 정치인을 감시하고 정치인이 발의하는 것을 추적하고 소환도 하고요. 필요하면 온라인 정당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가 온라인 정당이 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온라인 정당을 만들 수 있게 하려는 거죠.
들어보면 입법과 감시가 혼재되어 있는데, 좀 다른 영역이잖아요. 입법을 지향하는데 아직까지는 감시 위주인 건지요?
카레 프로젝트를 다시 세분화하면 감시와 참여가 있습니다. 참여도 다시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참여가 있고 정부에서 시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플랫폼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하나의 바구니에 담아놓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는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서울시나 기관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같이 고민해보기도 하고 한겨레 같은 언론에서 기자기 이슈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모아 입법까지 가보는 프로젝트도 해보고 시민단체와 함께 입법을 가는 프로젝트로 가보기도 하고요. 이 프로젝트는 답을 쉽게 못찾을 거 같아서 이것 저것 다 시도해보려는 거죠.
지금 온라인 광장으로서의 빠띠를 아고라랑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다음에 일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이 일이 공적인 영역에서 시민 주도의 독립적 기관에서 해야 하는 일이지 포털이라는 영리 기업에서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입니다. 빠띠 개발팀이 나중에 기업이 되든 시민단체가 되든, 이 광장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빠띠는 실제 정치 세력들과 연대를 하거나 직접 정치참여를 하는 것이 자유롭습니다.
또 하나는 아고라 때 아쉬웠던 것이, 이슈 중심의 아카이빙이 잘 안된다는 건데요. 이슈가 계속 흘러가버리는 게 한국적 특성인 거 같은데, 이 부분에 많이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예컨대 기본소득만 해도 검색을 통해 정보를 체계적으로 얻기 어렵죠. 위키 정도가 있고, 그 외에는 기사들인데 기사는 워낙 많고 맥락도 없어요. 그런 이슈를 쌓아가려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거죠. 능력있는 사람들은 블로그를 만들겠지만 10년 이상 가는 블로그를 많이 보지 못했고 페북은 계속 흘러가고 게다가 그 안에서만 도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슈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이슈가 잘 정리되고 정리된 이슈를 사람들이 의미를 가지고 보게 되고 이슈와 관련된 사건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도 하고 제도에 영향도 미치는 곳이 되는 것이 빠띠의 지향점입니다.
온라인에서 많이 모여서 얘기하지만 그래봤자 온라인 공간이다, 온라인에서의 뜨거움과 오프라인에서의 뜨거움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요. 과연 그런 갭을 줄일 수 있을까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얘기하는 게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취미활동을 다음과 네이버 카페를 통해 하고 있는데 만일 카페가 없었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만났을까요? 정치나 사회이슈가 아닐 뿐이지 이미 온라인에서 만나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죠. 저는 정치나 사회 이슈에서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온라인 광장에서 사람들이 작은 관심사들을 중심으로 모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외국의 광장 가보면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데 그런 경험을 온라인 상에서 하는 공간이 생길 거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정치나 사회 문제가 취미나 동호회, 여행 등에 비해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어요. 신문 등에 나오는 내용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 뭔가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온라인에서 3백명이 떠들어도 밖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분야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3백명이든 1천명이든, 온라인 상에 모일 수 있게 된 것이 혁신 아닐까요? 그게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는데 20년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카페도, 아고라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랑 비교해보면 우리를 이미 많이 변화시킨 거죠. 이미 많은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도 많이 변화할 거예요. 한 단계는 이미 온 거고 그 다음에 필요한 것과 관련해서는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프라인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힘이 없다는 생각은 섣부른 결론일 수 있어요. 온라인이 좀 더 힘을 가질 방법들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죠.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요?
빠띠에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시민단체를 오랫동안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례가 될텐데, 어떤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왜 그 주제에 헌신하냐고 물어보면 꼭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한다고 해요. 요즘 온라인 상에 그런 1인 활동가들이 생기거든요. 예전에 블로거들이 그랬듯이. 남들이 지금 관심없어도 그 문제에 계속 집중하는, 그런 사람들이 잘 활동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사람들이 모일 광장을 만들고, 그런 작업들이 의미있는 작업이 되도록 이름붙여주는 일을 하려고 해요. 전업활동가, 전업기자, 전업 국회의원 보좌관 같은 사람들이 하던 일들을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어떤 기업에서 환경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전문가일텐데, 그런 분들이 환경 이슈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빠띠를 이슈 중심으로 발전시키려 하죠. 이슈별로 빠띠메이커라고 이슈를 끌고 갈 사람들을 계속 찾고 있어요. 시민단체일수도 있고 기자일 수도 있고 개인일 수도 있고. 그게 동호회 활동에 버금가는 만족감을 준다면 사람들이 하지 않을까요? 게임만 가지고도 동호회가 만들어지는데 사회문제도 재미난 것들이 많고, 이미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 온라인 상에서 정치, 사회이슈를 다루는 것에 대해 전사회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투자가 되고 있는가 하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만큼 투자가 되지 않아요. 국가가 그런 걸 해주면 좋겠지만, 국가는 또 정치세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걸 해보려고 하죠. 그런 상상을, 또 실험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확 넘어서서 완전히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의회도 행정부도 지금과 같지 않을 거예요.
빠띠 외에도 그런 그룹들이 있나요?
빠띠에는 풀타임 멤버들이 여섯 있고요. 와글에서 현재까진 사례를 알리는 작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시스템에 대해 전반적인 고민을 하고 있고요. 그 외에는 작은 팀이나 개인이 더민플(더 나은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개발자 모임)에 모여 있어요. 슬랙이라는 메신저에 150명 정도 모여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갖죠. 잘 모일 때는 오프라인에 50명 정도 모여서 교류도 했고, 앞으로는 온라인 정치라는 주제로 여러 분과도 만들고 공동 프로젝트도 해보려고 합니다.
말씀하신 것과 같은 플랫폼이 진짜 없나 생각해봤는데요. 의사소통이 생각만큼 자유롭지는 않지만 페이스북 같은 데서 자발적으로 그룹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오프라인과 어떻게 소통되는지는 다른 문제이기는 한 것 같아요. 메갈리아 대 일베 케이스만 보더라도 일반 사람들은 뭐가 다르냐고 얘기하잖아요. 축적된 게 아니라 흘러가는 순간 중에 자극적인 것들만 보게 되니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게 옳고 그른지 모르겠고. 잘되는 카페들은 정치적 얘기 못하게 하거든요. 정치적인 얘기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옳고 그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분란이 일어나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팩트들은 있으니까 광장에 있는 도서관처럼 사실에 잘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만 하면, 그들이 문제 파악과 변화 방향을 더 잘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과정에서 아카이빙 같은 문제가 중요한 고민지점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시민단체들이 자료를 잘 축적해서 공유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빠띠에서도 이슈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서요. 관심이 있으시면 함께 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다음 단계로 잘 못 나가요.
세월호 사건만 하더라도 뉴스를 보면서 난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기껏 광화문 나가도 또 다음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죠.
그 다음이 없거든요.
그 다음의 한 수를 자꾸 시도하고 작은 시도라도 끝까지 해봐야
또 그 다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같은 시민단체들이 빠띠와 결합하려면 어떤 것들을 해야 할까요?
이슈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필요하면 제도화하는 것이 원래 시민단체들이 하는 일이잖아요. 그 과정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온라인 툴을 쓰는 걸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빠띠 웹사이트에 들어가보시면, 아직은 정리가 덜 되었지만, 예컨대 기본소득 이슈라고 하면, 기본소득 관련 자료들을 모으고, 또 기본 소득에 대한 쟁점을 모으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기본 소득이 도입되면 사람들이 일 안할 거다, 근로의욕이 떨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걸 쟁점으로 올리면 찬성 반대 누르면서 토론을 하더라고요. 그 외에 게시판 토론도 마련되어 있고, 필요하면, 지금 준비 중인데 청원도 하고요. 여기서 나온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의회 등에 밀어넣는 것도 시민단체들이 할 수 있을 테고요. 그런데 그런 작업에 맞는 툴이 지금 온라인 상에 없으니 빠띠가 그걸 하고 싶은 거죠. 나중에 특정 이슈들을 하나 잡아서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여러 이슈들을 다루다 보니 다양한 활동가들의 얘기를 듣는데요. 너무 좋은 자료, 새로운 정보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료를 어떻게 정리해뒀냐고 물어봤더니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는 책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검색이 안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조금만 더 잘 할 수 있도록 저희가 해보려고요.
반대로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우리가 뭔가를 해보고 싶을 때 기존의 툴들이 적합하지 않아서 고민을 멈추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말씀하신대로 어떤 경우는 어려운 개발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요. 또 어떤 경우는 좀 더 쉬운 다른 툴을 쓰도록 가이드해줄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물어볼 데가 없어서 그 툴을 못찾는 경우도 많아요. 사실 툴이 있는데도 물어볼 데가 없어서 몰라서 못하는 경우와 아직 그런 툴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그 두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거죠. 그러니 일단 문을 두드려주세요. 당장 다 해결해줄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시도를 해보고 그 작업이 실패하더라도 그 기록을 보고 다른 분들이 또 시도해볼 수 있을 테고요.
또 하나의 문제는 IT 관련 작업들은 시도를 해봐야 결과를 아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시도를 하는 비용이 상당해서 단체들로서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울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UFO 팩토리 얘기로 다시 넘어가게 되는데요. 지금으로선 UFO팩토리는 어떤 단체가 재원을 마련해오면 그 팀이 쓰기 위한 솔루션을 만들고 있죠. 그런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카카오나 네이버를 누구나 쓰듯이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들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래야 비용도 감소할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참 어려워요. 온라인에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다음 단계로 잘 못 나가요. 세월호 사건만 하더라도 뉴스를 보면서 난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기껏 광화문 나가도 또 다음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죠. 그 다음이 없거든요. 그 다음의 한 수를 자꾸 시도하고 작은 시도라도 끝까지 해봐야 또 그 다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죠. 오프라인 경우 보통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잖아요. 광우병 이후, FTA, 세월호 등 세 번 정도 같은 경험들을 하다보니 피곤한 것보다도 맨날 대중집회에 나가지만 뭐가 바뀌는 건가 하는 무기력을 느끼게 되죠.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어떤 얘기가 맞는 거냐 하면서 공회전되는 게 있고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점들이 서로 따로 노는 거 같은데, 두 부분이 잘 연결되서 하나의 사례가 만들어지면 확산되는 속도감이 엄청날 것 같긴 해요.
잘 안되는 경험을 하면서도 다들 ‘뭐 되는 거 없나’하고 관심은 계속 가지는 거 같거든요. 그러니 열심히 실험하다보면 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얼마 전, 요즘 디지털 민주주의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스페인에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요. 거기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정책을 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깊이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거기는 사회이슈가 생겨서 시민들이 모였고 그 모인 힘으로 정당이 만들어지고 그 정당에서 시장을 배출하고, 그런 과정을 다 겪었고, 시정을 펼치는 과정에서 나온 플랫폼을 쓰는 사람들은 우선 그 지지자들이더라고요.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초기에 시민들이 모였을 때는 기술자들이 붙어서 도움을 주긴 했지만 새로운 툴을 개발한 건 아니고 있는 걸 활용했었죠. 그러다가 시장을 배출하고 나서 시민참여를 전담하는 부서를 독립적으로 만들었는데요. 많지도 않아요. 네 명. 그 부서를 스타트업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모든 걸 보장해주고, 거기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죠. 거기서 나온 걸 오픈소스로 풀어서 유럽 40개 도시 정도가 이를 도입하고 있고요. 바르셀로나 시장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시장의 발언, 시장이 사용한 카드 내역이 다 올라와 있어요. 물론 아직 거기서도 대세는 아니고 본인들로서는 힘든 과정이었겠지만 이 모든 게 매우 정석같이 진행되어서 부럽더라고요. 오프라인의 에너지들을 온라인에 잘 연결시킨 거죠.
냉정하게 얘기하면 온라인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냐는 점에는 물음표가 붙기는 해요. 온라인을 잘하고 있지만 그 이면의 에너지들은 확실히 오프라인에서 온 것이죠. 주도하는 분 중에 미겔이라는 분이 있는데, 너희는 어떻게 그런 작업들이 사회에 설득력을 가졌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돈도 안 받았고 시민들이 중심이 되도록 서포트하려고 노력했다고 대답해요. 그런 태도나 철학 같은 것도 영향이 있었을 거 같아요.
또 재미있었던 건, 네스타(영국의 사회혁신 재단)나 EU 등에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움직이고 있어요. 시민참여의 정치를 어떻게 하고 어떤 플랫폼이 필요한지를 다 정리하고 그런 걸 실험하는 팀에 지원을 하고 EU 차원의 과제들이 나와 있어요. 저는 캡스 프로젝트(the European Commission's initiative on Collective Awareness Platforms for Sustainability and Social Innovation)라는 3년짜리 프로젝트의 마무리 컨퍼런스에 갔던 건데요. 그 프로젝트의 결과로 다시 과제가 나왔는데 비트코인, 온라인 의사결정, 온라인 민주주의가 다 있고, 그 중에 하나가 네스타의 D-CENT 프로젝트(21세기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 프로젝트)죠. 그 외에도 EU 과제 중에 지속가능한 도로 같은 프로젝트도 있고,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먼 훗날 은퇴하시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비슷한 걸 하겠죠. 개발은 계속 하고 싶고 개발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고요. 다만 조직을 벗어나서 개인적으로 할 거 같아요. 욕심을 낸다면 조금 더 동등한 관계의 조직을 이뤘다가 흩어지고 또 만들고 흩어지고 하는 그런 조직을 해보고 싶어요. UFO 처음 만들 때, 해적단이라고 메타포를 잡았어요. 조직 목표는 항해지도라고 부르고 매일 쓰는 일지는 항해일지라고 이름붙였고, 자율성과 평등한 관계를 중요시했어요. 그래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주식회사나 협동조합이 아닌, 좀 더 출입이 자유로운 조직을 만들면 좋겠다 싶어요.
긴 시간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같이 해볼 수 있는 일들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