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유한재단에서 이필상 교수님 만나 뵙고 여덟 번째 소셜런치를 진행하였습니다. 이필상 교수님께서는 함께하는 시민행동 고문으로 현재 유한재단 이사장직을 맡으시며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이번 소셜런치에서는 대표님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위기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IMF가 급성 위기라면 지금은 위기가 오는 줄 알면서도 병들어가는 만성 위기 상황"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가요? IMF를 예견하셨던 그 때만큼인가요?
IMF는 경제위기가 올 줄 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당한 급성위기였다면 지금은 경제위기가 오는 걸 알면서도 서서히 병들어가는 만성위기입니다. 지금이 더 나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급성위기는 수술하면 금방 살아나지만 만성위기는 수술도 어렵고 한다고 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지금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IMF만큼이나 힘들 것입니다. 결국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는 계속해서 ‘위기가 아니다.’, ‘IMF때 만큼은 아니다.’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를 인식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인정을 해야 책임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인정하면 지지율이 떨어지고 표심이 흔들리는 등의 정치적인 이유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여당은 노동개혁, 야당은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잘못되었습니다. 노동개혁 따로, 재벌개혁 따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같이 해야 합니다. 노동도 재벌도 병이 들었으면 둘 다 고치는 것이 맞지 하나만 고치려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논리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여야를 떠나 경제적인 논리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환자에게 수술을 잘못하면 더 위험해지듯이 바르게 진단하고 처방 해야 합니다. 경제를 정치 논리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의미있는 정책을 내놓아도 언론이 정치 프레임을 씌워"
노사정 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4대 장벽이 있습니다. 정치, 관료, 재벌, 언론. 그 중에서 정부와 국회가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는 국민의 입장에서 소통의 창이 되어서 노사정 모두가 동의할만한 제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국회는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지지 않아야 않고 합의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지금 언론은 보수와 진보 싸움에 선봉장입니다. 의미 있는 정책을 정치인들이 내놓아도 정치 프레임을 씌웁니다. 유능한 언론이라면 보수언론은 보수진영을, 진보언론은 진보 진영을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론들이 진영논리 차원의 기사를 쓰며 상대 진영 ‘깎아 내리기’만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협의체는 서로 양보할 것은 하고, 얻는 것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협의체를 만들고 나서 서로의 입장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해체가 우려되는 지금 협의체 구성으로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협의체가 구성될 만큼 사회적 인식과 동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 비해서 시민단체가 신뢰성과 영향력이 떨어진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시민단체가 그 동력을 만들어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결국 정치권에 기대해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여야가 마음을 비우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서로 만나기만 하면 표만 생각합니다. 국가적으로 사회 협의체를 만들려면 연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독일의 사례를 들어보자면, 동독과 서독이 통일 한 이후 슈레더 총리는 병들어가는 독일 사회를 위해 하르츠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진보진영의 총리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안의 내용은 상당히 보수적이었습니다. 시장 규제 완화, 노동 시장 유연성 높이기, 복지 지출 감축 등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한 내용들이었습니다. 하르츠 개혁은 연정을 통해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독일 경제와 사회를 살리는데 기여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제대로 된 연정을 만들어서 새로운 개혁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위기를 극복한다면 독일 같은 나라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남미 같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향후 5년이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선 경제가 너무 안 좋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가 해결이 된다면 다른 문제들도 어렵지 않게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등의 수출로 우리 경제가 버텨왔는데 중국이 기술에 발목이 잡혀 있고 위원화 절하로 수출 경쟁력도 떨어졌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산업이 붕괴 된 것이 우리나라 불경기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내수도 좋지 않습니다. 가계부채, 실업 문제 등으로 빈사상태입니다. 대내외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희망이 없습니다. 경제에 희망이 없으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사회가 불안해지면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면 싸움이 일어나면 결국 경제와 사회가 모두 붕괴될 것입니다.
경제 부총리가 국회의원직은 겸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맞습니다. 굉장히 잘못되었습니다. 경제부총리라면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부총리 역할에 충실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부총리라는 타이틀을 얻고 다시 총선에 나가려고 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 부총리는 한국 경제를 피상적으로 진단하고 돈만 풀면 살아난다고 주장하며 계속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렸지만 가계부채, 정부부채만 증가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쓸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없습니다. 최경환이 경제 살리는 길을 없앴습니다. 장관 임명에 전문성보다 권력의 논리가 굉장히 많이 작용한 결과인거죠.
풀린 돈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요?
대부분 부동산 시장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값이 오른거죠. 부동산 시장을 살려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논리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개 몸통으로 꼬리를 흔드는 거지 꼬리로 몸통을 흔드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살아나서 국민 소득이 들어나서 부동산 시장이 같이 살아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빚까지 지면서 집을 사게 되는 현상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재산의 80%가 부동산인데 실물경제가 뒷받침하는 부동산시장은 거품입니다.
"정부가 위험한 경제 상황을 인정하고 책임있게 나서야 신뢰 회복이 시작될 수 있어"
그렇다면 앞으로의 해결방안은 무엇일까요?
경제 부총리 단독으로 정책을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먼저 정치적인 논리를 내려놓고 책임감 있게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한국 경제가 위험합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첫 걸음입니다. 위기를 인정하고 해결 방안을 내놓으면서 국민들의 힘을 얻어야 합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처방에 대해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회동력입니다. 제일 중요한 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각계 각층이 와해가 되어있어서 동력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북한 DMZ지뢰 도발사건에서 여야가 한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정치적 논리를 떠나 다른 분야, 특히 경제 문제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일자리가 한번에 많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연일 화두되고 있는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제 문제를 해결할 때 플러스 섬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플러스 섬 게임이 되려면 재벌개혁을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경제를 봉건 영토화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감 몰아주기, 세습 경영, 골목 상권 침범 등등이 이루어지는 경제 영토에서는 창조 경제, 미래 경제가 나올 수 없습니다. 노동개혁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노동개혁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새로운 발전, 산업이 만들어 질 수 없는 환경에서 노동 개혁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임금 구조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의 노동 개혁은 우리 경제에 필요하지만 결코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대책이 아닙니다. 결국 갈등을 크게 유발되는 대책이죠. 재벌 개혁을 통해 경제 체제를 공유하고 사람이 발전 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이 노동개혁인거죠. 재벌 개혁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경제 문제는 노동시장에서도 고통분담 해야 합니다. 더불어 R&D 투자를 많이 해서 앞으로의 산업 동력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롯데 경영권 다툼이 있었을 때 재벌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롯데 경영권 다툼을 흥미로운 형제 싸움으로만 비췄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 사건은 재벌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덮기에 급급하고 진보 언론은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한거죠.
"노조가 노동시장을 스스로 파괴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돼"
재벌개혁 뿐만 아니라 노동개혁의 필요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시장에도 비민주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양극화 현상이 특히 심한데, 비정규직과 정규직과의 양극화는 노동시장이 스스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노조의 역할이 아쉽습니다. 왜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권익은 생각 안 하는가? 노조의 활동이 노동시장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고 개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뜻있는 노조라면 ‘우리도 경제위기에 책임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 마련하겠다.’라고 인정하고 임금 피크제를 하겠다고 먼저 나서야 합니다. 재벌들도 문제가 있지만 그 안에서 자라 온 노조도 문제가 많습니다. 노사 문제를 정치권에서 여당은 재벌 편, 야당은 노조 편으로 갈라서서 자기가 서로 선이라고 싸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임금 피크제나 최저임금인상으로만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 가지 모두 시행한다고 해도 효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인상과 임금피크제가 수용될 수 있는 구조가 된 상태에서 나와야 의미가 있는 거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면 부작용만 생깁니다. 임금 피크제가 정년을 연장한다는 데에는 의미가 있지만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이야기되는 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임금피크제 말고도 시간피크제가 시행되어야"
임금피크제가 시행되면 정년이 늘어나 국민연금 재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도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이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노인 빈곤율 세계1위,고령화 속도가 1위입니다. 노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복지가 일자리이입니다. 6,70대도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생산력이 낮은 노인 인력을 시장이 수용할 수 있냐의 문제입니다. 임금 피크제말고도 시간피크제도 시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기계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굉장히 높아서 사람이 8-9시간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계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나간다는 정책도 나와야 합니다. 여야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경제 위기 속에서 금융권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금융권은 기능 상실 상태입니다. 금융권의 사회적 역할은 훌륭한 사업, 기업을 발굴해서 투자하고 성장시키고 과실을 배당하고 투자자들이나 예금자들에게 나눠주고 경제가 전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행들은 담보잡고 돈놀이를 하며 은행끼리 단기적인 수익률 경쟁을 합니다. 투자의 기능을 하는 은행이 없고 그럴 능력이 있는 은행도 없습니다. 이러한 금융산업은 낙후되었다라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로 기반자체가 미미합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첫 번째로는 관치 때문입니다. 정부 주도의 금융 정책이 금융 산업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금치 금융 체제를 완전히 없애고 경쟁력 있는 금융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산업이 사람 중심이 아닌 재벌중심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재벌들이 독과점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금융 시스템을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도 재벌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서 은행이 투자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재벌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재벌의 시장 독과점이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재벌이 시장을 제도하고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잘 살아 보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시장경제이고 그 시장경제를 효과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만든 것이 기업제도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기업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거꾸로죠. 기업들이 사람과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기업 중에서도 재벌이 어떤 고용정책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취업이, 실업이 결정되고 있습니다. 재벌이 어떤 임금정책을 하느냐에 따라서 분배구조가 달라집니다. 재벌이 어떤 언론, 광고 정책을 하느냐에 따라서 언론 판도가 달라지고요. 또 재벌들이 어떤 상품을 쓰냐에 따라서 문화가 달라집니다. 기업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