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나루 도서관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손예린 님이 주신 글입니다.
8월 12일 시민공간 나루에 자리잡은 함께하는 시민행동, 민우회, 녹색교통, 환경정의 네 단체는 염형철, 박평수, 장동빈 세 활동가가 22일째(8월 12일 현재)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주 남한강 이포보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환경연합의 4대강 반대 고공 농성 시위에 관해서는 오늘의 행동 7월 23일자 '환경권, 그리고 양심을 위한 오늘의 행동' 참고 ) 흐리다가 밤 늦게 빗방울이 비칠 것이라는 당초 기상 예보와는 달리, 여주로 향하는 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주에 도착하자 비는 거의 그쳤고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거의 초가을 날씨처럼 느껴졌습니다.
강둑의 작은 귀퉁이에 꾸며진 장승공원에 환경연합에서 상황실로 사용하는 천막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장승공원의 주변에는 찬성 측 주민들이 붙여놓은 현수막이 잔뜩 걸려 있었습니다. 외지인들은 참견 말고 나가라는 현수막이 눈에 많이 띕니다. 자연이 배타적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소유물인가요? 4대강 공사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원시적인 환경보존’이라고 매도하는 글귀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동안 모래알이 하나 둘 쌓여서 이루어진 이 강이, 여러 가지 셀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쉬는 이 강이 원시적인 것일 뿐이고, 크레인으로 갈아 엎고 콘크리트로 포장한 강은 비원시적이고 현대적인 강인가요? 경제적인 이권다툼, 무조건적인 개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상 외에도 원시와 비원시에 대한 그릇된 이분법과 자연을 멸시하는 인간의 오만이라는 수많은 요소들이 4대강 공사에 대한 논쟁에 얽혀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환경연합 상황실에는 이 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써서 남겨준 격려의 말들이 걸려 있습니다.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들도 눈에 띄지만 더욱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이 남긴 메모들이 더 인상 깊게 가슴속에 남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아저씨 힘내세요. 아저씨 너무 더워요’라고 귀엽고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다녀갔습니다. 아이들의 글에는 종종 그림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강과 물고기와 수초들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그려주었습니다. 지율스님께서 한 강연에서 이대로 자연 파괴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는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어떤 이미지도 떠올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상황실에는 두 대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서, 20미터 고공에서 농성 중이신 세 분의 활동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망원경을 잠깐 들여다보자 책을 읽고 계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약간의 물과 선식으로만 연명하며 시위를 하고 계시는데,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이 하루 섭취 권장량의 5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나마 날씨가 선선하고 햇빛이 쨍쨍 내리쬐지 않았지만, 다른 날에는 얼마나 견디기 힘들지 상상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방문한 우리들은 시원한 날씨에 찾아와서 별다른 고생도 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민우회, 녹색교통, 환경정의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액션은 평화로운 강물과 같은 행진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다 같이 들어도 넉넉할만큼 기다란 파란색 현수막을 펼쳐놓고 세 활동가에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와 강을 살리자는 염원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시민행동의 곰탱은 붓과 물감을 들었지만 직접 그리기보다는 굳어서 열리지 않는 물감 뚜껑을 여는 데에 큰 활약을 했고, 김영홍 사무처장님(별명을 몰라요!)은 물고기들을 알록달록하게 색칠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예술적인 열성이 지나쳤는지, 어느 분께서 “이제 그만 그려! 아까는 진짜 멋있었는데 지금은 낙서처럼 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 어쨌든 우리는 완성된 우리의 멋진(!) 작품을 들고 이포교를 향하여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변 분위기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행렬은 경찰차의 호위를 받았고, 지나가던 주민들이 언성을 높여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지나가던 차들이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렸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모 나라에 머물 당시 차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동양인을 보면 싫다는 표시로 경적을 마구 울리던 아픈 추억이 떠올라 더욱 슬펐습니다 ㅠ.ㅠ) 하지만 우리의 컨셉은 평화로운 강물이기에, 우리는 강물이 흘러가듯 파란 현수막을 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포대교의 중간쯤 오자 세 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이포보가 아까보다는 조금 더 가깝게 보입니다.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는 커다란 노란색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담은 현수막이 그 분들한테도 잘 보일까요? 그제서야 글씨를 너무 작게 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세 분의 이름을 힘껏 외쳐봅니다. “염형철! 박평수! 장동빈!” 우리의 함성을 듣고 손을 흔들어주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느새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고 우리들은 촛불집회를 위해 다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환경연합 활동가들과 나루 단체, 나눔문화 대학생들과 낙동강 함안보에서 자전거를 타고 남한강 이포보까지 4일만에 도착했다는 당찬 친구들 2명까지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포보 꼭대기에서도 반짝이는 불빛 세 개가 보입니다. 작은 앰프를 통해서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노래를 전해보려고 애써봅니다. 우리는 비록 땅 위에 있지만, 저 높이 올라서 고행을 자처하시는 분들과 한 마음임을 알리려 해 봅니다. 마지막 액션으로 우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촛불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뭔가 하트 모양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한 느낌입니다. ^^;
그 분들은 싸늘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서치라이트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눈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밤을 보내시게 되겠기에 서울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이포대교 한쪽 편에는 이미 습지가 완전히 메워져서 원래 강이었다는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저쪽 편에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로 몇 마리가 유유히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시는 동네 주민 분들이 활동가들에게 했다는 “우리 영업 방해하지 말고 나가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강이, 자연이, 영업의, 장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는 없는지요.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만 여겨지는 이 곳에서 백로들의, 작은 생명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아파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아예 쫓아가보지도 못했는데, 활동가들 걱정되네요.
자연에게도 사람에게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 정말 누구의 정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