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준비하며 삶 되돌아본다

‘아름다운 이별학교’



» 삶에 대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아름다운 이별’인 죽음을 성찰해 보자는 뜻으로 마련된 ‘아름다운 이별학교’가 13일 서울 정동 배재빌딩 학술지원센터에서 첫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여섯인 김진협씨는 요즘 작은 고민이 하나 생겼다. ‘어차피 인생에서 죽음이 오리란 건 분명한 사실인데, 어떤 죽음이 멋지고 아름다울까.’ 28년간 아이비엠에 근무하다 8년 전 퇴직한 김씨는 이미 시신기증 서약까지 마쳤다. 나름대로 홀가분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김씨는 “건강하게 살면서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자식에게 유산 안 남기고 이 세상을 뜨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며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13일 서울 정동 배재빌딩 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아름다운 이별학교’에 참가한 건 이런 까닭이다. 우리 사회는 평균수명이 늘고 출산은 줄면서 급속히 고령사회로 가고 있지만, 아직 노년의 삶이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는 편이다. 허겁지겁 살면서 정작 중요한 가족과는 원망의 정만 쌓다가, 미처 자신의 삶을 정리할 차분한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우리 문화에 대한 반성이 이번 ‘이별학교’의 취지다.

4주 동안 매주 월요일 진행되는 ‘이별학교’의 이날 주제는 참가자들이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한 ‘인생 수업’이다. 프리랜서 방송작가 주은경씨의 진행에 따라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 먼저 마련됐다. 주로 50~70대 장노년층인 참가자 40여명은 다섯 모둠으로 나눠 앉아 자신의 삶에서 좋았거나 슬펐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고 서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여성 참가자는 가장 슬펐던 일을 묘사하는 그림에 머리를 땋아내린 한 여자아이의 얼굴을 그린 뒤 “아이를 먼저 잃었는데, 그게 인생에서 가장 슬펐다”며 울먹였다. 대개 가장 슬펐던 일로는 가족이나 친한 사람의 죽음을, 기뻤던 일로는 결혼 혹은 출산을 들었다.


이렇게 차분히 인생을 돌아본 뒤 2주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한 수업을 한다. 유산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사례들을 찾아보면서 생전에 쌓은 부를 사회에 기증하는 기쁨과 의미도 알아보고, 유언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참이다.


이날 참가자 가운데는 언뜻 보기에 ‘젊은이’로 보이는 이들도 적잖았다. 올해 마흔일곱인 공성림씨는 “예전엔 죽음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며 “이미 산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내 나이에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권오봉(29)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권씨는 “태어난 데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땐 순서가 없지 않으냐”며 “죽음을 잘 준비해야 나중에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날 첫 수업에 앞서 인사말을 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이사는 “변호사 생활을 할 때 보니, 연세 들어 병원에 실려간 뒤엔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하고 재산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하기가 쉽지 않더라. 현명함과 지혜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시게 되는 걸 많이 봤다”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역설했다. 아름다운재단은 내년부터 한 해 서너 차례 지방에서도 학교를 열 계획이다.

삶의 마침표인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이를 통해 남은 삶에 아름다운 느낌표를 찍는 일, ‘웰빙’ 못지않게 중요한 ‘웰다잉’이 우리 사회에 또 하나 화두를 던지고 있다. 문의 (02)766-1004.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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