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밖 아이들 후견하는 김명자씨

9살때부터 미국인이 도와줘 공부도 마쳐
“단순한 경제적 지원 아닌 마음 열어주는 일”
남편 · 큰 달도 동참…한국 국외지원 매년 늘어





“지난 7월 미국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29일 대구 집에서 만난 김명자(52)씨는 친어머니 김효례(78)씨를 옆에 두고도 거리낌없이 푸른 눈의 ‘또다른 어머니’ 진 헐린의 죽음을 슬퍼했다. 40년 이상 양어머니와 이어온 인연의 끈은 세상의 따스함을 일깨워준 난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가 살아계실 적엔 미국이 꽉 찬 나라인 것 같더니 이젠 텅 빈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가 양어머니를 처음 알게 된 건, 아홉살이 돼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한 1962년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김씨는 홀어머니 김씨, 동생 등과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어렵게 살았다. “다들 밥도 제대로 못 먹던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게 바로 양어머니 헐린. 그가 보내주는 많지 않은 달러는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플랜’(옛 이름 양친회)을 거쳐 ‘왕자파스’와 빨랫비누가 돼 김씨에게 전해졌다. 덕분에 ‘공납금’도 내고 작으나마 용돈도 쓸 수 있었다. 고교 3학년 나이가 되면 지원이 끊기는 규정에 따라, 학교를 늦게 들어간 김씨는 서울여상 2학년 때 지원이 끊길 뻔했지만 세심한 헐린은 이런 사정을 알고 개인적으로 도움을 이어갔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지만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김씨는 양어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1994년 헐린으로부터 비행기표 두장이 든 편지가 날아왔다. 남편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김씨는 고운 연분홍 한복을 차려입고 양어머니에게 큰절을 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맺어진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었다.


이제 양어머니는 세상을 떴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김씨를 통해 움을 틔웠다. 현재 대구에서 음식물 처리업체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씨도 치온 아세파(에티오피아)와 호앙 마이(베트남) 어린이의 후견인이 돼 매달 지원금을 꼬박꼬박 보내주고 있다. 김씨 남편과 큰딸도 이 사정을 알고 외국 어린이 1명씩을 후원한다. 김씨는 “힘든 처지에 놓인 외국 어린이들을 돕는 일은 내가 받은 ‘아름다운 빚’을 되갚는 과정”이라며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열고 꿈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들을 향해 나라 밖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는 이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48개 국외원조 엔지오가 가입한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가 추산한 바로는 대부분 개인 회원의 회비인 정기후원금이 2000년 192억여원에서 2004년에 454억여원으로 늘었다. 어린이 구호뿐만 아니라 의료, 지역개발 등 국외 지원사업에 너도나도 힘을 보태는 게 이젠 대세다.

갈비뼈만 앙상한 에티오피아의 어린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끼니 걱정을 하는 동남아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각종 단체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전화 한 통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빚’의 채권자가 될 수 있다. 대구/글·사진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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