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행동 사람들, 어제부로 이메일 망명 했습니다. 개인메일이야 따로들 있겠지만서도, 구성원들이 대부분 단체 공식메일을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왠만한 짐은 다 싸서 떠난 셈이 되겠네요. 그 급작스러우면서도 복잡한 망명과정을 지금부터 살짝 공개해볼까 합니다.

망명을 택한 배경

지난 6월 18일. 이 날은 한국 정부가 공권력 '남용'하다못해 공권력의 이름으로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짓밟은 황당한 날이었습니다. (검찰,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프라이버시에 대한 정부의 무개념은 현 정권만의 일은 아니지만,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오히려 당당하게 한 개인의 사생활을 망가뜨리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웠네요. 상황이 이 지경이니, 누군가 "야, 짐싸자" 외칠 것도 없이 이메일 망명은 당연한 선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랜동안 쌓아온 활동의 과정이 담긴 소중한 기록들을 보호하기도 하고, 정부의 한심한 인권침해 행태를 비판하고 싶기도 했죠.

그런데 사실 이메일 망명이 그리 단순한 작업은 아닙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인 경우에는 더 그렇죠. 애초에 구성원 모두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실무적으로도 서버나 웹 관리를 좀 해본 분들이라면 아주 쉽게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꽤 여러 순간 머뭇거리며 많은 정보를 검색해서 풀어가야 할 단계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겁낼 건 없어요. 어쨌거나 글을 읽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 대부분 할 수 있는 작업이랍니다. 그리고 처음이 어렵지, 한번 껍질을 깨고 보면 그동안 왜 그러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더 큰 세계가 펼쳐져 보이게 마련이지요. 혹시 정보가 없어서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시민행동이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 벌였던 삽질의 흔적을 공개하니 한번 도전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메일 하나 옮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사이버 망명, 선언에 불과하다) 누구든 수동적으로 시스템에 종속되기보단 넘나들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주기에는 충분할 듯 합니다. 이미 사회적 도구들도 그만큼 발달해있고요.

상황과 조건

망명을 결정한 매우 짧은 시간동안 뇌리를 스쳐간 우리의 주객관적^^ 상황과 조건은 이랬습니다.

  • 포털이 아닌 별도 도메인을 갖고 구성원별 계정을 제공하고 있었음 - 포털 메일을이 아닌 독자 계정이기 때문에 메일주소를 유지한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가 있죠.
  • 무료 계정으로 아웃룩/익스프레스 같은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쓰다 유료 웹메일 서비스로 이전한 지 2년째였음 (연 약 30만원) - 상당수 구성원이 이메일 클라이언트와 웹메일 모두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기에 변화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적었습니다. 솔직히 비용이 너무 아깝;;;기도 했고요.
  • 유료 서비스를 선택한 이유였던 수신확인, 대용량파일 첨부 등의 기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듬 - 이건 아마도 이메일이 즉각적인 소통수단이 아니라 보조적인 정보공유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한편 이메일 역시 아카이브로서 관리할 필요가 있는데, 기존의 IE와 ActiveX에 갇힌 서비스의 한계도 자주 지적되곤 했지요.
  • 이메일을 통한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도구 필요 (메일링리스트, 주소록 공유, 위젯, RSS 등) - 단순히 이메일만이 아니라, 새로운 SNS서비스와 연동되거나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필요해졌습니다.
  • 결정적으로, 정부와 포털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강한 저항감 공유 - 사실 변화는 손이 많이 가고 낯설고 귀찮은 일이지요. 그럼에도 조직이 변화를 선택하자면 좀 더 좋은 기능을 쓰고싶은 욕구에 더해, 기존 시스템에 대한 강한 불만이 필요한 법이죠. 이 점이 핵심이었달까요^^

이런 조건들을 만족시킬만한 대안으로는

  • 독자 서버 구축/운영은 무리란 걸 이미 수차례 비싼 수업료 내고 배웠기 때문에 패스.
  • POP/IMAP를 지원하는 해외서비스를 아웃룩/썬더버드 등으로 오프라인으로 관리하거나,
  • 윈도 라이브(Windows Live), 구글 앱스(Google Application) 같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할 수도 있겠는데요.

일단 시민행동은 구글 앱스를 선택했습니다. 구글 앱스는 기존의 지메일, 토크, 캘린더, 닥스 등의 서비스를 특정 조직이나 모임이 독자적인 도메인을 적용해 쓸 수 있게 해주죠. 현재 이메일의 경우 계정당 7GB에 50개 이하의 계정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그 이상은 고급형으로 유료입니다. (고급형은 연간 50달러. 그렇더라도 저희가 쓰던 메일호스팅 비용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네요. 물론 현재 사용중인 계정은 20개 미만이라 무료^^)

망명을 결정한 뒤, 진행과정은 이랬습니다.

규모: 약 15개의 이메일 계정, 계정별 500MB~1.5GB 용량
작업기간: 약 12시간
작업내용
  1. PC의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통한 계정별 백업 / 각자
  2. 구글 앱스 등록, 설정 / 담당자
  3. 도메인 메일서버 변경 / 담당자
  4. 이메일 클라이언트와 구글 앱스 연동 (동기화) / 각자
  5. 백업 자료 업로드 / 각자
  6. 개인별 설정 진행, 활용팁 공유 / 각자

구성원들이 상황에 공감하고 함께 결정했기 때문에, 진행과정 역시 누군가 전담하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이 작업이 단순하게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환경을 선택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담당자가 무한친절을 베푸는 인물이 못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혼자서 작업을 대신하는 것보다는 각자가 직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데 드는 수고가 길게 보면 더 경제적이란 사실을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하룻밤 사이에 번개불에 콩볶아먹듯 진행한 이메일 망명 삽질의 과정은 대략 위와 같았답니다. 하나하나의 과정에 필요한 정보가 많아서 구체적인 작업내용은 다음 글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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