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법(안)에 대한 의견서

기획예산처가 7월 5일 입법예고한 국가재정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출합니다.

1. 종합의견 : 기본 입법기조는 바람직하나 구체적 실현방안이 미흡

국가재정법(안)(이하 '법(안)'이라 함)은 성과지향 예산(성과관리), 재정공시, 시민의 재정감시, 총액예산 등의 개혁방안을 담고 있어 행정관리적 성격 위주인 예산회계법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진일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예산회계법, 기금관리기본법 등 개별화되어 있는 법률을 통합한 점도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법(안)에는 위 개혁방안들을 다소 형식적으로 제도화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성과관리, 총액예산, 시민참여 등은 명확한 법률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일부 시행되고 있던 것들입니다. 주된 문제는 해당 시책들이 의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전시성 시책으로 추락하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들 개혁방안을 단순히 선언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이들 방안이 의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법(안)에는 개혁방안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성과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됩니다.

기존 법률의 통합이라는 면에서도 단순한 합체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통합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 실제 세부내용에서는 기존 제도의 문제점까지 그대로 수용하거나 도리어 악화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통제지향적, 중앙집권적 재정관리 기조에도 근본적 변화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전체적 입법기조와 배치될 수 있는 문제조항들에 대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특히 법(안) 중 '예산의 불법지출에 대한 시민감시제도'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행정상 민원제기 내지 제보창구 개설에 불과한 것으로서 활용 가능성이나 실효성이 크게 의문시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수준의 제도로는 실질적으로 시민에 의한 예산감시가 가능할 수 없습니다.
시민에 의한 직접적 예산감시제도를 도입하려는 의사가 있다면,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국민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국민소송과 같이 시민이 직접 법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고서는 객관적이고 엄정한 시정조치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 조항별 의견

(1) 제1조(목적) : '효율', '투명', '건전'과 같은 기조만으로는 새로운 예산운영의 철학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성과지향', '성과에 대한 책임', '분권' 등과 같은 새로운 기조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2) 제2조(정의) : '성과'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투입이나 활동이 아닌 구체적인 산출과 결과를 지향하는 새로운 예산운영의 기조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3) 제6조(국가재정운용계획의 수립) : '2회계연도 이상'의 기간을 중장기재정계획으로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중기재정계획이라 하더라도 향후 5개년도에 대한 전망과 계획의 틀 속에서 국가재정을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법(안)이 정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담길 내용을 감안하더라도 '5회계연도 이상'의 기간에 대해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됩니다.

(4) 제7조(성과중심의 재정운용) : 성과중심의 재정운용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에 대한 내용이 부족합니다. 첫째 '성과'가 단순한 투입과 활동정보가 아니라 명확한 결과평가를 전제로 하는 것임을 정의해야 합니다. 둘째 성과평가에 국민과 국회 등 객관적 외부자가 참여함을 명시해야 합니다. 셋째 성과계획서와 성과보고서는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를 위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5) 제8조(재정정보의 공표) : 재정정보의 내용과 공개방식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합니다. 재정정보에는 단순한 재무적 정보뿐 아니라 투자성과에 대한 정보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감사원 등 감사기관의 지적사항 등 가급적 폭넓은 정보를 편리한 수단으로 공개하도록 해야 합니다.

(6) 제9조(재정운용에 대한 의견수렴) : 재정운용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별도의 자문기구가 필요한지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자문기구의 역할이 불분명할 경우 자칫 또 하나의 예산낭비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문기구 설치보다 시민단체, 관련전문가를 포함한 국민에게 최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폭넓은 의견과 비판을 수렴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7) 제16조(특별회계 및 기금의 여유재원) : 특별회계 및 기금의 여유재원을 '다른 법률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일반회계에 전입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판단됩니다. 과거 이들 재정을 자의적으로 방만하게 사용한 데 대한 비판이 있는 터에 이러한 규정을 두는 것은 기금 등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기획예산처에 지나친 권한이 집중된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최소한 '동 재원을 관리하는 주체(기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더불어 국민의 직접부담으로 조성된 국민연금 등의 4대 연기금(年基金)은 이 조항의 예외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됩니다.

(8) 제25조(중기사업계획서 제출) : 앞의 제6조에 대한 의견과 같이 2회계연도 이상의 기간에 대한 계획만으로는 부족합니다. 5회계연도 이상 기간에 대해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보다 타당할 것입니다. 또한 매년 12월말까지 계획서를 작성토록 할 경우 내용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12월은 국회 등의 예산일정으로 인해 부처에서 중기계획을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차기연도 예산이 확정되면 1월중에 실행예산을 편성한 다음, 수정된 사항을 고려하여 3∼4월경에 중기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울러 중기사업계획서는 기획예산처뿐 아니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도 제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9) 제26조(예산안편성지침 통보) : '예산안 편성지침에 기출한도를 통보할 수 있다'는 내용만으로는 총액예산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정도의 의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총액예산제는 부처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대해야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법(안)에는 부처의 예산편성 자율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또한 지출한도의 규모와 설정방식 등이 구체화되지 않으면 기획예산처의 자의적인 한도액 설정으로 부처의 자율성이 제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10) 제40조(예산집행지침과 보고), 제41조(재정집행관리), 제42조(예산의 전용) : 기존의 통제 위주 재정관리 기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총액예산제, 성과관리제 등의 개혁방안들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집행에 대한 재량을 확대하면서 성과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산집행지침은 하향식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에서 자율적으로 마련하여 집행하고,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산통제장치를 그대로 두고 말로만 성과를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11) 제50조(기금자산운용의 원칙) : 기금운용에서의 투명과 효율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기금운용이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처방이 있어야 합니다. 기금사업은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사업과 중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금사업 정당성 확보의 원칙, 기금사업에서의 성과관리와 성과공시의 원칙 등을 명시해야 할 것입니다.

(12) 제53조(기금의 통합·폐지) : 법(안)의 취지는 좋지만 구체적 심의과정에서 해당부처의 반발 등을 극복하고 기금의 통합·폐지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금에 대해 선별적으로 통폐합을 결정하는 것보다 '기금 일몰제'와 같은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방만한 기금설치와 운용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보다 적합한 방법이라고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5년 단위로 모든 기금은 일단 폐지하고 엄격한 심의를 거쳐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다시 5년 단위로 연장 운용하는 것입니다.

(13) 제57조(결산의 원칙) : 결산서에 제공되는 재정정보의 내용에 대한 규정이 기존과 같이 막연합니다. 성과평가결과와 성과보고에 대한 정보가 결산서에 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4) 제64조(국세감면의 제한) : 새로운 국세감면을 요청하는 경우 감면액을 보충하기 위해 기존 국세감면의 축소 또는 폐지방안을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자칫 신규분야나 기존 국세감면이 적었던 부처에 불리하게 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15) 제70조(지방자치단체의 재정건전화 등) : 지방재정 건전화 노력을 평가하여 특별교부세를 차등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등이 지방분권 기조에 반할 우려가 있습니다. 기존의 통제 위주 정책이 지방재정 건전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통제제도가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며, 자칫 지방분권을 저해하는 대표적 제도 중 하나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16) 제78조(예산의 불법지출에 대한 시민감시) : 부패방지법에 따른 부패행위 신고제도 등 기존의 제도와 차별성이 없으며, 실효성도 의문시되는 내용으로서 제도도입의 의의를 찾기 어려운 졸속입법으로 판단됩니다. "공공기관의 예산사용, 공공기관 재산의 취득ㆍ관리ㆍ처분 또는 공공기관을 당사자로 하는 계약의 체결 및 그 이행에 있어서 법령에 위반하여 공공기관에 대하여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부패방지법 제2조 참조)는 이미 부패방지법에 부패행위로 규정되어 있어 동법 규정에 따라 부패방지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으며, 신고사건의 처리에 관해서도 자세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법(안)의 시민예산감시제도는 해당기관의 장에게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단순한 내용에 불과하여 기존의 제도보다도 못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아가 정부가 수차례 도입방침을 천명한 '국민소송제'가 시행될 경우 시민예산감시제도는 더욱 설자리가 없을 것이 분명한 임시적 제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국민소송제 도입약속 실천을 서두르지 않고 별다른 효과도 거두기 힘든 이러한 제도를 법(안)에 포함시킨 것은 자칫 이를 핑계로 국민소송제 도입을 늦추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소한 법(안)에 국민소송제 도입근거를 명시하는 수준의 입법노력이라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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