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자금 공개 논란을 보며 김근태 의원을 다시 생각한다.
정치권의 자기희생적 고백과 적극적 제도개선 노력을 촉구한다.
오늘(23일)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거부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대선자금의 수입-지출규모와 내역 등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누구로부터 얼마를 받았는가' 하는 핵심부분이 익명 처리되어 있고, 공개된 내용이 진실한가 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없는 까닭에 알맹이 없는 숫자 나열에 불과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민주당은 현행 '정치자금에관한법률'상의 제약이 개선되지 못한 것을 부실한 공개의 이유로 들고 있고, 법개정을 통해 구체적 후원내역 공개와 공신력 있는 기관의 객관적 검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당의 그러한 주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정치자금 공개 및 정치자금법 개선 제안을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 요구로 인식하고 적극적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자금법의 문제점 개선 주장은 실상 시민사회단체등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것으로서, 그간 정치자금제도 개선을 위해 뚜렷한 노력을 보인 바 없는 민주당이 과연 진정한 개혁의지를 갖고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대한 판단은 앞으로 대통령과 민주당 등 여권이 어느 정도의 실천 노력을 보이는가 여부에 따라 가능할 것이다.
오늘 민주당의 대선자금 단독공개와 정치자금법 개선의지 표명이 '말의 성찬'에 머물고 만다면 국민은 이를 단순한 정치공세의 일환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최근 대선자금 공개 논란의 와중에 새삼 재판 진행중인 김근태 의원의 '양심고백'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경선자금을 받아 썼다는 '양심고백' 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내일(24일)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 한다.
그간 언론과 시민사회단체 등 뜻있는 많은 이들이 김근태 의원 사건은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 성격의 양심선언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를 실정법 잣대로 처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수차례 법원과 검찰은 물론 전국민에게 호소해왔다.
그럼에도 최근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제안 기자회견중 김근태 의원 사건에 관해 '일방적 고백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통령도 지금의 정치자금제도로는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모든 정치인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깨끗한 정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김근태 의원은 바로 그러한 현실을 바꾸는 노력의 첫걸음으로 먼저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부터 고백하고 나선 것이다. 누군가 실천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각오와 나의 잘못을 말하지 않고 남의 잘못이나 제도의 잘못을 말할 수 없다는 양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뜻이 김근태 의원의 행동을 평가절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길 바라지만, 자기희생적 고백으로 정치개혁의 물꼬를 트고자 했던 그의 행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다소 부적절했던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김근태 의원의 양심고백을 진정 '웃음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할 책임을 지고 있으며, 특히 대통령은 그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개에 이르기까지의 '굿모닝시티' 불법로비 사건과 연이은 대선자금 공개 논란을 지켜보면서 우리 정치현실과 법제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논란을 정치개혁의 물꼬를 트는 전기로 만들기 위해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모두의 자기희생적 고백과 적극적 제도개선 노력을 촉구한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어느덧 잊혀져가고 있는 김근태 의원의 '양심고백'에 대해 정당한 평가와 대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거시적 안목의 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끝.
2003년 7월 23일
「시 민 행 동」공동대표 이필상 정상용 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