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여, 앉아서 ‘일’ 봅시다

‘독특한 실천’ 시작한 정영철, 안진걸씨


» ‘앉아서 소변보기’를 실천하는 안진걸·정영철(왼쪽부터)씨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있는 한 맥주집 화장실에서 좌변기에 앉아 소변보는 자세를 보이며 웃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아내는 항상 나보고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해. 내가 좌변기 좌석을 올리고 일을 본다고 해도 아내는 안 된대.”


잭 니컬슨이 주연한 영화 <어바웃 슈미트>에서 은퇴한 회사원 슈미트가 아내에 대해 늘어놓은 불평 가운데 하나다. 그래도 슈미트는 소변을 볼 때면 오만상을 쓰면서도 좌변기에 주저앉는다. 현실에도 슈미트 같은 남자들이 있을까?

물론 드물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변기에 앉는 남자들이 있다. 시민단체 녹색교통운동의 정영철 간사(오른쪽)와 희망제작소의 안진걸 팀장(왼쪽)이 그런 이들이다.

“아무리 주의하려고 해도 서서 일을 보면 일부가 튀게 됩니다. 앉아서 일을 보면, 주변도 쾌적하게 하고 청소하는 비용도 아끼는 셈이지요.”(정 간사)

“사람에 따라 소변의 일부가 3m 이상 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서서 용변을 보면 정작 우리 몸에도 튈 수 있고, 주변 세면도구 등에도 튈 수 있습니다.”(안 팀장)

두 사람 가운데 정 간사가 먼저 이 독특한 실천을 시작했다. 2003년 우연히 읽은 잡지 기사가 계기가 됐다. 독일에서는 많은 남자들이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때맞춰 겪은 체험도 그의 결심을 부채질했다. “어느 날 아침에 큰일을 보러 좌변기에 앉았는데, 피부 밑으로 축축한 느낌이 전해져 오더군요.” 정 간사는 그날부터 앉아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고, 같은해 안 팀장에게 이 새로운 실천을 ‘전수’해줬다.

두 사람이 아주 ‘별종’은 아니다. ‘거친 남성’ 이미지의 영화배우 최민수씨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아내를 위해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은 청결과 절약을 넘어서는 문제다. 화장실을 같이 쓰는 타인에 대한 배려의 문제이고, 나아가서는 양성평등 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먼저 아내가 대환영이에요. 남자들은 잘 모르지만, 여성은 큰 불편을 느꼈나봐요.”(안 팀장)


“우리 집 아이들한테도 권유했는데, 큰아들놈은 잘 안 듣더군요. 학교 가서 그렇게 소변보면 왕따당한다네요. 남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통념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굳어진 거지요.”(정 간사)

“남자들끼리 여자를 비하할 때 ‘앉아서 쉬하는 것들’ 같은 식으로 표현하잖아요. 그 안에 벌써 편견과 우월감이 깔려 있죠.”(안 팀장)

여성들은 물론 공감하는 분위기다. 대학원에 다니는 김수연(30)씨는 “언젠가 ‘하루 동안 남자가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설문에서 한 여성이 ‘아이들과 남편을 불러놓고 앉아서도 소변을 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답한 것을 본 적이 있다”며 “남편과 함께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0년 8월 ‘서서 소변보기에 반대하는 엄마들’(www.mapsu.org)이라는 시민단체가 설립돼 캠페인을 벌였다. 독일에서는 1980~90년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앉아서 소변보기를 홍보한 뒤, 화장실에 붙은 홍보 포스터가 익숙한 풍경이 됐다. 2002년 4월 <마이니치>가 보도한 설문조사를 보면, 일본에서는 남자의 약 15%가 앉아서 소변을 보고 있다.

이런 소변 습관이 비뇨기 계통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걱정하는 이들에게 임우상 연세대 의대 교수(비뇨기과)는 “앉은 자세에서 소변을 보는 것과 배설기관의 건강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오히려 앉은 자세에선 배설기관의 괄약근이 쉽게 열리기 때문에, 배뇨장애를 가진 환자들 중에는 앉아서 더 쉽게 소변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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