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영세의원(민주노동당), 구논회(열린우리당), 정화원, 엄호성(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하여
우리는 천영세 의원(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저작물의 공정이용 일반조항 신설 및 디지털 도서관 활성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저작권법 개정안과 구논회(열린우리당), 정화원, 엄호성(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에 대해서 환영하는 바이며, 국회의 조속한 논의와 통과를 촉구한다.
한국 저작권법은 1957년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개정되었지만, 주로 저작권자들의 권리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현행 저작권법은 제1조에 명시된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제정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권리보호에 치우친 균형을 잃은 법률이 되었다. 이로 인해 디지털네트워크 환경에서 공정이용의 권리와 인터넷 문화는 점점 위축되고 있으며, 네티즌들에 대한 고소가 급증하고 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저작권조약이나 실연음반조약 등 전세계적 차원의 저작권 강화흐름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또한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 높은 수준의 저작권보호를 요구하였다. 국내에서도 공중송신권 신설, 기술적보호조치의 의무화, 비친고죄화, 퍼블리시티권 도입 등 더욱 노골적인 저작권 강화 입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영세, 구논회, 정화원, 엄호성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 개정안들은 이전 법안들이 무시하고 훼손해왔던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이라는 법 제정 취지와 목적을 우리 저작권법에 복권시키고, 심각하게 무너진 “권리와 공정이용 사이의 균형”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중요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천영세 의원안의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이용 일반조항의 신설이다. 이는 저작재산권 제한 사유로 저작권법에 열거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저작권자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현행 저작재산권의 제한 규정은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사안만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사회의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는 입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기존의 제한규정에 속하지 않는 공정이용에 대해서는 적용하기가 힘들다. 공정이용 일반조항은 이런 문제들을 상당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디지털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도서관 면책조항의 개정이다. 도서관조항은 사회의 문화발전을 위하여 그 사회 구성원들이 도서관에 부여한 정보의 공적 접근 제공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저작권법을 통하여 보장한 것이다. 정보에 동등하게 접근하고 이를 재분배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도서관의 역할은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조항은 원격열람과 도서관 등이 디지털화한 도서의 도서관 사이의 전송에 제한이 있어, 그 기능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이 개정안은 이러한 제약을 최소화하여 디지털도서관의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기술적 보호조치의 해제 의무를 신설하는 것이다. 이는 저작물의 이용이 공정이용(저작재산권의 제한) 사유에 해당될 경우 저작권자에게 기술적 보호조치를 해제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저작재산권의 제한영역, 예를 들어,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학교교육의 목적이나 시사보도,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등의 공정한 이용이 기술적보호조치로 인해서 제약받는 것은 부당하며, 오히려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권리자에게 기술적보호조치 해제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공정이용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독일을 비롯하여 각국에서는 공정이용 조항과 기술적보호조치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술적보호조치 해제에 관한 입법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개정안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을 면제로 통일”하고, “권리의 침해죄 일부를 침해행위를 업으로 한 자로 축소”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천영세 의원의 개정안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일반 네티즌들에 대한 대량 고소 및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줄이고, 예술가들과 학자들에게 더 많은 창작물 및 학술성과에 자유롭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주어 우리 사회의 “문화의 향상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가는 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구논회, 정화원, 엄호성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그 표현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인 입법 취지는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어문저작물을 텍스트 파일 형태로 복제, 배포, 전송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시각장애인들의 효율적인 학습뿐만 아니라 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내용이며,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제약받아 온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을 확대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법의 제자리 찾기가 이제야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시작일 뿐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지금까지 무너져온 저작권자들과 이용자들의 균형이 곧바로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한 균형을 이루고 저작권법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이번 개정안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번 개정작업을 단지 이용자의 권리를 확대한다는 차원보다는, 저작권법의 정책적인 목표인 보호와 이용간의 균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공정이용이 저작권법에서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검토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17대 국회가 이 개정안들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요청한다. 또한 입법자들이 저작권법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되새겨서, 이용자의 권리와 저작권자의 권리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문화 ‘산업’만이 아닌 문화 발전을 실질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법들을 만들어내는데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촉구한다.
2006년 11월 28일
문화연대/정보공유연대 IPLeft/진보네트워크센터/
평화마을피스넷/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함께하는시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