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담의 파놉티콘(Panopticon)에서 전자 시놉티콘(Synopticon)까지 :
감시와 역감시, 그 열림과 닫힘의 변증법
홍성욱 (토론토대학ㆍ과학기술사)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지 제23권 제1호(2001년 6월)
파놉티콘(Panopticon): 계몽의 빛에서 감시의 시선으로
벤담의 파놉티콘: 공리주의 철학과 기술의 결혼
공장의 파놉티콘: 감시의 시선에서 정보와 기록으로
수퍼파놉티콘, 역파놉티콘, 시놉티콘: 정보ㆍ전자 파놉티콘과 역감시
에필로그
벤담의 감옥 파놉티콘은 푸코에 의해 현대 사회의 규율 메커니즘으로 탈바꿈했고, 푸코의 파놉티콘은 정보 파놉티콘과 전자 파놉티콘으로 이어졌으며, 이것들은 다시 수퍼파놉티콘, 역파놉티콘, 시놉티콘이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개념적 진화를 거듭했다. 파놉티콘의 이러한 가지치기 식의 궤적은 현대 사회의 규율ㆍ통제의 메커니즘이,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빅브라더'의 시선에 의한 감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라는 인식에 기인했다. "감옥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바로 감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았을 것"이라는 푸코 식의 사회 = 파놉티콘 = 감옥의 등식은 현대 사회와 조직에서의 통제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등식에는 시선보다 정보 수집이 중요해진 과정, 정보 수집이 종종 피감시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파놉티콘과 달리 전자 감시는 역감시와 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중요한 인식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파놉티콘에 국한된 것만도 아니다. 19세기를 통해 정부가 국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계적으로 처리한 것은 국민에 대한 관료제의 통제를 강화하기도 했지만, 복지국가와 공민권에 대한 보호를 가능케 함으로써 개개인의 권리를 신장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작업장이나 기업 조직에 대한 감시는 노동자나 직원을 통제하는 기능 이외에도 작업을 합리적으로 '조정'(coordination)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감시는 감시 대상을 '통제'하는 기능과 함께 그 대상을 '돌보는' 긍정적인 의도와 의미를 포함한다.
이 글을 통해 얻은 중요한 결론 중 하나는 정보 파놉티콘이나 전자 파놉티콘을 가능케 하는 정보 기술이 시놉티콘이나 역파놉티콘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사를 통해 어떤 기술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사회ㆍ문화적 영향을 낳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기술의 궤적은, 기술이 새롭게 열어주고 힘을 부여하는 가능성이나 사회 세력들 그리고 동시에 그 기술이 무력화시키는 기존의 가능성과 사회 세력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때그때 형성되는 불안정한 균형에 따라 불규칙하고 가지치기 식의 경로를 따른다. 이러한 상호작용 때문에 특정한 기술이 특정한 궤적을 그리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를 들어 정보기술은 반드시 정보 파놉티콘을 낳게 되어있다는) 자칫 비관적인 결정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기술의 궤적에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이지, 기술의 초기 디자인에 각인된 발전 방향성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명백하게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기술을 놓고 이 기술이 가져올 수도 있는 미래의 역설적인 결과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위험한 태도이다. 이럴 경우 기술의 궤적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를 원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기술의 경우도 이것이 기존에 힘을 가진 권력자가 다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감시용으로 사용되기가, 권력에 대한 역감시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 보다 훨씬 용이하다. 역파놉티콘은 가능하지만 자동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역파놉티콘을 초라하게 만드는 '범세계 파놉티콘'(global panopticon)의 힘이 압도적이다. 이 범세계 파놉티콘을 역파놉티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존재하는 다양한 국제기구의 감시 능력을 더 민주적이며 책임있는 것으로 만들고 이를 위해 정당만이 아니라 시민운동단체, 노조, 환경운동과 여성운동 집단을 포함한 시민사회 전체가 이러한 국제기구의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파놉티콘에 대한 논의는 주민등록증이나 포기되었다가 최근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전자주민카드와 같은 신분증 데이터베이스에 대해서도 새로운 통찰을 가능케 한다. 대부분의 데이터베이스는 접근자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다른 패스워드를 지정해서 그 공개 정도를 차등적으로 결정한다. 파놉티콘이 시선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능했다면, 전자 파놉티콘은 정보 접근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고 권력의 네트웍과 데이터베이스를 사회의 투명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주민등록증의 개개인의 신상 정보나 유전자 정보와 같은 경우에는 정보의 과다한 수집 자체를 금해야하고, 이미 수집된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경우에는 그것의 접근을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서 좀더 평등하게 (즉, 경우에 따라 모두에게 평등하게 개방하거나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한을 두는 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권력을 가진 어떤 자는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나를 옭매는 파놉티콘으로 내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