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화된 권력에 대한 굴종장치
변호사 김기중
말지 1999. 7월호 기고


우리나라 주민등록제도는 크게 세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 개개인에게 고유번호부여, 거주지 등록, 지문이 날인되어 있는 주민등록증 발급 등이다.
그런데 이 주민등록제도는 여러 면에서 인권침해요소를 안고 있다.

우선 첫 번째 요소부터 살펴보자. 모든 국민에게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있다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이름을 부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한다.
1622515번.
이 번호만 보면 남자이며(1), 전라도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은(6), 등록된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바로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이 번호를 댄다. 이 번호가 없으면 그 존재가 부정당할 수도 있다. 적어도 공적인 영역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번호로 구분되고, 인식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번호로 인식되는 마당에 굳이 이름을 부를 필요가 있을까. '효율적인' 행정시스템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번호를 부른다면 어떨까. 그러면 사람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정보량이 대폭 감소되고 단순화되어 행정의 효율성을 높임은 물론 경제활동에서도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번호는 공적인 영역뿐 아니고 개인적 영역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람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문서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요구된다. 만약 주민등록번호의 기재를 거부하면 일체의 서비스나 일체의 거래가 거부된다. 지금의 이런 상황은 개인적 영역에서도 사람이 번호로 인식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사람은 번호로 인식되어서는 아니된다. 적어도 국가는 시민을 번호를 인식하고 번호로 관리해서는 아니된다. 여기에 무슨 논리가 있을 필요조차 없다. 번호로 인식되는 국민은 그저 관리대상일 뿐이다. 국민은 무슨 상품이나 재고물건이 아니다.

두 번째로 거주지 등록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거주지를 등록하지 않으면 오히려 일반인들이 불편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한다. 하지만 북구와 독일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물론 미국 등 영미법계 나라에서는 주거등록을 하지 않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주거등록을 받지 않고도 이들 나라의 행정서비스와 복지서비스는 세계적 수준이라 정평이 나 있다. 오히려 전 국민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행정서비스와 복지서비스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는 주거등록이 원래 복지서비스나 행정서비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거등록의 목적은 경찰행정에 의한 통제의 필요성 때문에 나온 것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만 주거등록이 이루어지고 있는 독일의 경우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독일의 지방정부는 주민의 주거등록을 받아 세금을 부과하고 선거인명부를 작성하는데 사용하며 경찰 조사에도 이용한다. 진정한 민주정부는 국민에 대해서 주거등록을 강제해서는 아니되며, 주거등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독일과 일본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시행되면서 그 정보가 중앙정부에 이관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문제인 신분증을 보자. 우리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회를 상상조차 하지 못해 왔다. 전자주민카드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 왔던 필자는 다양한 모임에서 주민등록증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비교적 권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민변의 소모임에서 주민등록증의 타당성에 관하여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는냐는 반문이 다수였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어도 사회는 잘 유지될 있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벨기에, 노르웨이 등의 나라에서는 국가가 발급하는 신분증이 없어도 별다른 문제없이 범죄자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가까운 일본에도 국가가 발급하는 신분증이 없다는 사실이다. 신분증이 없는데 어떻게 본인임을 증명하냐는 의문을 당연히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신분증이 없어도 본인을 확인하는 데 전혀 어려움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정한 조직에 소속되어 있고, 그 조직은 소속원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자체적인 신분증을 발급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경제활동인구가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전면허증 등으로 신분을 확인하는 것과 국가가 일률적으로 발급하는 신분증으로 신분을 확인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별다른 차이가 없으면 국가신분증을 발급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국가가 모든 성인에게 강제로 신분증을 발급했을 때, 신분증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신분증이 없는 것은 큰 일탈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상시적으로 신분증의 제시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법적인 불심검문은 불심검문의 불법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모든 성인국민에게 강제적으로 발급되는 신분증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반면, 통일적인 신분증이 없고 본인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회사의 신분증이나 운전면허증 등을 제시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신분증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시민이 관공서를 출입하면서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된다.

이제 주민등록제도 전체를 살펴보자. 주민등록제도는 박정희군사정부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1962. 5. 10.에 최초로 도입하였다.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된 것이 군사정부에 의해서였다는 점은 주민등록제도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일 것이다.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는 1968년 1.12.무장공비침투사건으로 국가안보론이 팽배하던 때인 1968. 5. 29.,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의 반대속에 공화당 단독국회에서 도입되었다. 주민등록증을 만든 이유는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식별, 색출하여 반공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주민등록증 소지의무는 1980. 12. 31.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도입되었다. 이렇듯 주민등록제의 중요한 틀이 모두 사회적 혼란기에 도입되었다.

주민등록의 내용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주민등록법은 첫 머리에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 하기 위한 법임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법에 의하여 수집되는 정보항목은 140여개에 이른다.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 하는데 그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주민등록정보는 세대별 구성으로 출발하였는데 1977년부터는 개인별 등록부를 두어 동시에 정리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국가에 의하여 항상 세대별, 개인별로 크로스체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는 국민에 대하여 가능한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려 한다. 윤석양이병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주민등록제도는 정보의 과도한 수집과 목적외 이용의 면에서 전체주의적 질서를 지향하고 있다는 김승환교수의 지적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주민등록제도의 내용중 가장 직접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모든 성인의 국민으로부터 열 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모든 성인의 국민으로부터 열 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하는지, 그렇게 채취한 지문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정부의 설명도 없다. 이러한 지문날인제도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문날인자에게 권력에 대한 복종을 내면화시키게 된다. 지문날인은 그 자체로 굴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에 새로 발급하는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에도 지문을 삽입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성인의 국민은 이번에 동사무소에 나가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힌 후 종이에 날인을 하거나 디지털 지문인식기에 엄지손가락을 대는 방식으로 지문을 채취당하고 있다. 새로 채취한 종이지문 또한 모두 스캐너로 읽어 들여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주민등록증 일제 경신을 계기로 모든 성인에 대한 디지털 지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되는 부수적인, 하지만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디지털 지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누가 관리할 것인가? 행정자치부가? 아니다. 당연히 경찰, 국가정보원 등 공안기관이 관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행정자치부에서는 지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할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국민은 상시적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 공안기관은 예비적 범죄자인 모든 국민의 지문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의 주인을 찾기 위해 매일 검색을 할 것이다. 이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지문과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왜 신분증을 발급받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설사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후손을 위해, 그리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위해, 적어도 지문날인만은 거부해야 한다.